"임금 25% 올렸다" 축배 든 노조…"다음 목표는 머스크"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3-11-04 07:00
수정 2023-11-04 08:03

“노조가 없는 자동차 기업의 노동자 수천 명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테슬라, 도요타, 혼다 직원은 미래의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이다” (숀 페인 UAW 위원장)

노조의 완승이었습니다. 미국 최대 자동차 산별노조 UAW 얘기입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완성차 기업 ‘빅3’ 동시 파업을 6주간 이끈 UAW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제너럴모터스(GM)와 신규 노동계약 협상을 잠정 타결했습니다. 이미 포드 및 스텔란티스와는 잠정 합의를 마친 상황입니다.

UAW는 스텔란티스와 계약 기간 4년 반 동안 △일반임금 25% 인상 △물가 상승분 보전 △401K 퇴직연금 혜택 강화 등을 골자로 한 협상안에 합의했습니다. 나머지 2사도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로이터는 임금과 기타비용 증가 등을 고려하면 UAW가 33% 이상의 임금인상 효과를 얻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최장 6주 파업에 백기 든 기업들 당초 UAW는 임금 40%를 올려야 한다고 기업들을 압박했습니다. 포드는 23% 이상 올릴 수 없다고 버텼지만 ‘지난 4년간 CEO 연봉이 40% 올랐다’는 노조의 공격에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페인은 지난 9월 미 CBS 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자동차 기업과 CEO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며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일론 머스크 같은 탐욕스러운 CEO들이 로켓을 만들고 그곳에서 셀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노조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미 자동차 3사 직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던 2007년 이후 연 20억달러(약 2조6800억원) 규모의 임금 등 혜택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반면 지난 10년간 GM과 포드는 연 105억달러(약 14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UAW는 이번 임금협상의 승리를 발판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무노조 경영’ 회사를 노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미국엔 도요타나 폭스바겐, 현대차 등 노조가 없는 자동차 공장을 가진 회사들이 많습니다. 페인 위원장은 그 중 왜 테슬라를 콕 집어 얘기한 걸까요.


다음 타깃은 ‘자동차 시총 1위’ 테슬라 가장 큰 이유는 테슬라가 ‘노조 없는 유일한 미국 자동차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의 글로벌 직원 수는 2022년 기준 12만7000명에 달합니다. 정확한 미국 내 직원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텍사스, 네바다, 뉴욕 등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합류한다면 UAW는 단숨에 수만 명의 노조원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현재 UAW의 조합원 수는 약 39만명입니다.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 시대에 맞춰 직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짐 팔리 포드 CEO는 “전기차 생산 인력이 기존보다 40% 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차의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이대론 시간이 갈수록 자동차 노조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이미 UAW는 1970년대 전성기 대비 조합원 수가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 1위이자 무노조 기업 테슬라는 반드시 포섭해야 할 대상입니다.

테슬라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 시가총액 1위라는 상징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최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6900억달러(약 920조원) 수준입니다. 도요타를 제외한 GM, 포드, 폭스바겐, BMW, 벤츠, 현대차 등 나머지 완성차 시총을 모두 합쳐도 테슬라 한 회사에 미치지 못합니다. ‘글로벌 대표 자동차 기업’에 세계 최대 자동차 노조의 깃발이 꽂혀 있지 않다는 건 자존심상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미국인 67% “노조 지지한다” 지난 8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미국인의 노조 지지율은 54%였습니다. 10년이 지난 현재는 67%로 상승했습니다. 특히 UAW의 국민 지지율은 75%에 달합니다. 과거 미 자동차 노조는 최악의 비호감 대상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동차 기업들이 구제금융을 받고서도 2009년 무리한 파업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UAW 전 지도부는 부패 스캔들로 감옥에 갔습니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노조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갤럽은 미국에서 고물가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지친 근로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미국 현직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노조의 파업 현장을 찾아 “여러분들은 원하는 만큼의 급여 인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격려한 것도 이 같은 여론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노조가 이러한 민심을 놓칠 리 없겠지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아마존, 애플, 스타벅스 등 무노조 기업에서 속속 노조가 결성됐습니다.


“테슬라에 노조 깃발 꽂을 것” 배런스는 지난달 31일 자동차 파업 이후 누가 승자인지 분석한 기사에서 페인에게 ‘A-’ 점수를 줬습니다. 사상 최초 3사 동시 파업을 이끌며 노동자의 몫을 톡톡히 얻어냈다는 평가입니다. 배런스는 이 열혈 운동가가 테슬라 등 무노조 자동차 제조사들을 포섭하는 임무를 완수한다면 ‘A+’를 받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페인은 테슬라에 노조를 설립하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4년 뒤 돌아오는 임금협상에서 테슬라를 포함한 ‘빅4’ 단체 파업이 가능할까요.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주당 80~90시간을 일하며 공장에서 잔다고 떠들어대는 ‘눈엣가시’ 머스크입니다.



과거 UAW는 테슬라에 노조를 세우려 시도했지만, 머스크에 막혀 번번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머스크는 최근에도 “자동차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기업을 초고속 파산으로 이끌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페인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니, 화성행 로켓이니 하는 터무니없는 꿈으로 직원들을 현혹하는 이 억만장자를 손보지 않으면 UAW의 미래도 없습니다.

바이든 정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을 지낸 세스 해리스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테슬라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배틀로얄이 될 것”이라며 “머스크는 페인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머스크와 페인, 누가 누구를 과소평가했는지 시간이 알려줄 일입니다. 배틀로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 2편 ‘노조의 적, 머스크’에서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