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서학개미가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하죠. 당장 내일 몇 푼을 벌기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잃지 않는 방법을 전하려고 책을 썼습니다.”
2일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겸 아시아 회장은 한경코리아마켓 유튜브에 출연해 “하루하루 오를 것 같은 종목을 찍어서 투자하는 건 카지노에 가서 도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뉴욕생명은 약 80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다. 이곳에서 투자를 총괄하는 윤 CIO는 월가에서 가장 고위급까지 오른 한국인으로 꼽힌다.
그는 국적상 ‘검은머리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활발한 소통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2021년부터 한경글로벌마켓을 통해 자신의 투자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며 ‘서학개미의 등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현석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과 함께 신간 <윤제성의 월가의 투자>를 냈다. 윤 CIO가 강조하는 기본 투자 원칙은 ‘가치 투자’다. 가치 투자란 좋은 주식의 가치가 저렴할 때 사들여 장기 투자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종목을 편입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기본이다. 윤 CIO는 “여러 종목을 사두면 위험을 분산할 수 있고, 경기에 부침이 있더라도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다”며 “각 종목 분석이 어렵다면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단 ETF로 하더라도 레버리지, 쇼트(공매도)와 같은 리스크가 큰 상품 비중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상승이나 하락 흐름에 올라타는 ‘모멘텀 투자’도 가능하지만, 매도 타이밍이 중요한 데다 기업의 현금흐름 등을 더 자세히 봐야 한다”며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자신이 없다면 여러 자산을 사두고 경기 흐름에 따라 비중을 조절해 나가는 방식이 좋다”고 했다.
윤 CIO는 포트폴리오 배분 차원에서 채권 비중을 유지하는 것을 추천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주식과 채권을 나눠 담은 포트폴리오가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는 점이 증명됐다”며 “내년 이후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을 감안해 지금부터 나눠 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주식과 채권, 현금의 비중을 4 대 4 대 2로 유지하고 있다. 현금이 있으면 투자 자산의 가격이 급등락하는 등 이벤트가 있을 때도 대응하기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식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고금리가 이어져 경기 침체가 내년 하반기쯤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CIO는 “한국 주식은 반도체 등 경기 순환 업종이 주도주인 만큼 글로벌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 때 진입하면 좋다”며 “아직 글로벌 경기가 침체를 지나고 바닥을 찍는 패턴이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치 투자는 ‘바닥’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만, 기다림이 필요할 때도 생기기 마련”이라며 “이 책을 통해 매일 초조할 필요 없는 진짜 ‘투자’의 세계에 입문하는 개인투자자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제성의 월가의 투자>는 전국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윤 CIO와 김현석 특파원은 4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독자들과 북토크를 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