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열관리 기술 주도권을 둘러싸고 새 판이 열렸다. 한온시스템, 덴소 등 전통의 자동차 공조 강자들이 주름잡고 있던 시장에 현대위아를 필두로 후발 주자들이 도전장을 내밀면서다. 국내 유일의 엔진 제조 부품사인 현대위아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열관리 업체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회사 간 신경전도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위아는 지난달 경력직 채용 절차를 진행하면서 주력 사업인 차량 부품 인력 수요의 약 70%를 ‘열관리 전문가’로 뽑겠다고 공고했다. 이 회사가 차량 부품 부문에서 채용을 원한다고 밝힌 직무 13개 가운데 9개가 열관리 관련 직무다. 친환경차 통합 열관리 시스템(ITMS) 설계와 제어, 선행 개발, 시제작, 특허 출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인재 확보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위아가 열관리 전용 시험동까지 만들고 ITMS 본격 개발을 선언한 만큼 인재 확보에 팔을 걷은 것 같다”며 “좋은 조건을 제시해 ‘이직 러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말했다. 현대위아는 지난 9월 경기 의왕연구소 내 6069㎡(약 1839평) 규모 부지에 개발부터 실차 검증까지 할 수 있는 열관리 시험동을 준공했다.
내연기관차 엔진 모듈 부품사였던 현대위아는 전기차 열관리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올 한 해만 전체 연구개발(R&D) 비용의 절반인 366억원을 ITMS를 비롯한 친환경 제품 개발에 투입했다. 2025년까지 ITMS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엔 매출의 30%를 열관리에서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첫 단계로 올해는 기아 EV9, 현대자동차 코나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에 자체 개발한 냉각수 모듈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기존 한온시스템, 두원공조가 나눠 가졌던 시장이다.
열관리는 배터리만큼이나 전기차의 성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 전기차의 주행 거리, 충전 속도, 배터리 수명, 편의 기능 개선 등 ‘네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전기차의 배터리가 내는 전기 에너지의 20%는 동력 전달 과정에서 열에너지로 사라진다. 이 폐열을 실내 난방이나 배터리·부품의 적정 온도 유지에 활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전기차 열관리 시장에선 일본 덴소와 한국 한온시스템이 강자로 손꼽힌다. 한온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전기차용 히트펌프 시스템과 ITMS로 글로벌 1위도 넘보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자체가 보급 초기 단계인 만큼 열관리 시스템도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정답’이 어느 정도 나온 엔진과 달리 전기차 열관리는 후발주자에도 충분히 기회가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열관리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기존 업체들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회사 간 기술 유출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특히 인력 확보를 둘러싼 신경전이 심상치 않다. 한온시스템 노조는 “올해 현대위아로 이직한 열관리 전문 엔지니어만 6명이고 연말에도 대량 이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온에서 성장한 엔지니어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