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KF-21의 개발 비용을 분담하기로 했던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전투기 개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인도네시아는 재정이 부족하다면서도 미국·프랑스 등 다른 국가의 전투기를 속속 사들이고 있다. ○왜 인도네시아와 협력했나
KF-21은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KF-X)에 따라 개발 중인 전투기다. 사업비만 약 9조원으로 2032년까지 120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무기 사업으로 불린다.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정부는 국제 공동개발 사업 형태로 투자를 받기로 했다. 공군력 증강과 항공 기술 확보가 필요한 인도네시아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2014년 우리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각각 개발비의 60%와 20%를 대고 나머지 20%를 인도네시아가 부담하는 기본합의서를 작성했고 2016년 계약을 맺었다. 인도네시아가 시제기 한 대와 각종 기술을 이전받은 뒤 전투기 48대를 자국에서 생산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1조2694억원 상당의 사업 분담금 가운데 2783억원만 납부(올 2월 기준)하고 약 9911억원을 미납 중이다. ○말과 행동 다른 인도네시아1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KF-21 ‘보라매’ 분담금 납부 계획을 방사청에 통보하지 않았다. 엄동환 방사청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인도네시아 측이 10월 말까지 2023~2025년 3년 기간의 분담금 납부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업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인도네시아와의 협력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방사청장의 공개적인 ‘경고성 발언’에도 인도네시아가 제때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업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방위산업 워크숍에서 인도네시아 국방부 관계자는 “전투기와 관련한 한국과의 협력은 국가적인 최우선 프로그램이고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행은 다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인도네시아는 분담금 미납 이유로 재정 부족을 언급하면서도 해외 전투기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보잉과 4.5세대급 전투기 F-15EX 24대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해 2월에는 프랑스와 81억달러(약 10조8000억원) 규모의 라팔 전투기 42대를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또 올 6월 카타르로부터 중고 프랑스산 미라주 2000-5 전투기 12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군사 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인도네시아는 현재 러시아제 전투기와 오래된 F-16 전투기를 운용 중인데 약 1만7000개 섬으로 이뤄진 넓은 국토를 방어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개발 단계인 KF-21보다 당장 실전에 투입할 전투기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른 국가와 손잡나일각에선 내년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정치 지형이 전투기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독재자였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라보워 국방부 장관은 내년 대선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라보워 장관이 치적을 쌓기 위해 방산 수출 실적이 필요한 한국과 KAI를 압박하면서 계약 조건을 자국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다.
인도네시아가 계속 분담금 지급을 미루면 방사청과 KAI가 다른 국가와 손잡거나 독자 개발 등 ‘플랜B’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폴란드·아랍에미리트(UAE) 등 KF-21 개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도 여럿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