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음식은 심심한 음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채소로 만든 음식도 맛있고, 자극적일 수 있거든요.”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비건 레스토랑 천년식향은 ‘천년을 즐길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천년식향의 안백린 대표(사진)가 “지속가능한 음식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지은 이름이다.
천년식향의 시작은 ‘맛없는 케일 주스’였다. 안 대표가 어릴 적 가족들에게 만들어준 케일 주스를 아무도 먹지 않았다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대표는 그 일을 계기로 ‘맛있는 채식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사를 꿈꾸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의료생물학을 공부하던 중 그는 채식에 눈을 떴다. 고기와 밀가루로 이뤄진 식단으로 몸이 망가지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 영국 더럼대에서 음식과 건강 분야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로푸드(raw food) 요리 자격증을 취득한 안 대표는 2020년 6월 천년식향을 열었다.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안 대표를 천년식향에서 만났다. 이날은 1994년 영국 비영리단체 ‘비건 소사이어티’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비건(vegan)과 채식주의(veganism)라는 용어를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했다.
천년식향은 비건 레스토랑을 표방하지 않는다. 안 대표는 비건 음식이라는 표현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천년식향을 찾는 손님 중 채식주의자가 아닌 손님이 더 많다고 한다. 그는 “비건을 공부할수록 채식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게 된다”며 “천년식향이 비건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찾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비건 음식=심심한 사찰음식’이라는 편견을 거부한다. 천년식향의 음식은 짜고 자극적이다. 이름도 ‘섹스&스테이크’ ‘크레이지 리치 파스타’처럼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다. “채소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채소로 만들었는데 왜 이리 비싸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채소는 반찬, 즉 공짜로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는 “고기가 4000원짜리 햄버거부터 수십만원짜리 스테이크까지 다양하듯 채소도 마찬가지”라며 “비건 음식에도 칡전분, 트러플처럼 비싼 재료와 향신료를 사용한다”고 했다. 안 대표는 이어 “재료를 손질하면 10분의 1로 줄어들고 인건비를 고려하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며 “채소가 저렴하다는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육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일일이 수제로 만들어 비싼 비건 음식을 대량 생산 방식으로 저렴하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하려는 취지다. 안 대표는 버섯과 향신료로 고기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한우의 육향을 내는 방법을 연구한 논문도 작성 중이다. 버섯으로 만든 고기와 장조림 제품 등을 개발하고 26개의 특허·상표를 출원했다. 내년 상반기 아마존 입점을 준비하고 있고, 프랑스 백화점 식품관과 영국 진출도 논의 중이다.
“‘음식이 너무 자극적이다’ ‘대체육을 공장에서 만들면 안 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게 우선이에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먹는 게 환경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요?”
글=구교범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