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내년 유가가 90달러만 돼도 한은의 예측이 많이 변할 수 있다"며 "미리 가정을 해서 할 수는 없지만 리스크 관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물가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과 대한상공회의소가 함께 주최한 BOK-KCCI 세미나 '글로벌 무역파고 어떻게 극복하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대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은은 당초 유가를 배럴당 84달러로 전제하고 내년도 물가상승률을 2.4%로 전망했다. 유가 전제가 변하면 한은이 이달 중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물가 전망치도 높아질 수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가 생각대로 안정되다가 8~9월 유가 변동이 발생하면서 걱정되는 상황"이라며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뉴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란 개입 등이 없으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테러 위험성이 커지면서 리스크가 글로벌하게 커지는 부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인구구조 변화와 관련해서도 고령층 부양 문제로 청년층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가 "인구가 줄어들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해야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답하는 과정에서다.
이 총재는 "1인당 GDP를 높이려면 젊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기업을 만들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사회적 제도가 충분치 않아 나이 든 부모가 아프면 일을 그만두고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해외 노동자 유입을 통해 돌봄 등으로 활용하지 않고는 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고위험·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국가투자지주회사를 설립해 투자 마중물이 돼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구조를 잘 짜야한다"며 "직접 지원하는 식으로 할 경우 통상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또 축사를 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국내 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자할 때 세금을 포함한 법적인 문제가 많다"며 "체계적으로 엑시트(퇴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