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 재건축이 토양 내 불소 정화 비용으로 조합원당 400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국 대비 최대 10배 높은 기준 때문에 방배동 일대에서만 토지정화 비용으로 1700억원이 들어갈 전망이다.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방배13구역 재건축 조합이 최근 토양 오염조사를 진행한 결과 불소 정화 비용으로 약 6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이 사업장 조합원 수(1500여명)를 감안하면 조합원당 4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주택 재건축 사업이 활발한 방배동 일대 다른 조합도 상황이 비슷하다. 대장단지로 꼽히는 5구역은 불소 정화로 인해 760억원을, 6구역은 35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 이주를 마치고 착공을 앞둔 5구역은 불소 정화때문에 사업이 10개월가량 지연되기도 했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기준을 초과하는 불소가 토양에서 발견되면 정화책임자(개발사업자 등)가 토양을 정화해야 한다. 2002년 마련된 토양 내 불소 오염 기준에 따르면 주거지역은 400㎎/㎏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3100㎎/㎏) 일본(4000㎎/㎏) 오스트리아(1000㎎/㎏) 등과 비교해 최대 10배가량 기준이 높다.
정화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데다, 방배동의 경우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불소가 많아 주택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배 13구역은 “화강암 지반이라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불소를 정화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최근 지역구 의원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에 법 개정 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조합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토양오염을 발생시킨 경우가 아닌데도 사업시행자에게 정화 책임을 묻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화비용이 고스란히 민간 환경업체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규제심판부는 국내 불소 정화기준이 과도하게 높을 뿐 아니라 화강암 지반의 특징도 감안되지 않았다며 환경부에 기준 개정을 권고했다. 환경부는 내년 6월을 목표로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새 기준이 나올 때까지 조합들은 사업을 멈출 수밖에 없다”며 “화강암 지반 등에 대해선 선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등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성중 의원실 관계자는 “정화기준이 주요국가와 비교해 합리적인 수준까지 완화될 수 있도록 환경부와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