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의약품 리베이트 제재를 놓고 제약·바이오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신약 개발이나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해 통상 이뤄지는 임상·관찰연구비 지원을 부당행위로 간주해서다.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 신약 개발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공정위는 최근 JW중외제약이 2014년 2월부터 최근까지 1500여 개 병의원에 70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며 29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리베이트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리베이트 적발 사례에는 판촉을 위한 현금·물품 제공은 물론 임상 및 관찰연구 지원행위까지 포함됐다. 공정위는 JW중외제약이 2014년 5월부터 지금까지 병의원 임상연구 21건에 7억원을, 2015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는 관찰연구를 하며 13억원의 연구비를 병의원에 부당 지원했다고 결론 내렸다. 임상연구까지 불법 낙인문제가 된 임상 및 관찰연구 지원은 현재 시판 중인 신약과 관련이 있다. 임상 4상이라고도 부르는 시판 후 임상은 부작용 모니터링이나 약물 쓰임새 확장을 위해 이뤄진다. 시판 중인 신약의 부작용 연구가 바로 관찰연구다. 신약의 다른 효능을 찾는 게 연구자 주도 임상이다.
시판 후 임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흔하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클리니컬트라이얼에 올라 있는 시판 후 임상 건수는 3만 건이 넘는다. 국내도 600건을 웃돈다.
이런 시판 후 임상에 대한 공정위의 시각은 달랐다. JW중외제약이 신약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판단했다. 영업사원 일지가 빌미가 됐다. 일지에 적힌 ‘신규 환자 확보 성공’ 문구가 증거라고 했다. 회사 측은 임상 참여 병원을 상대로 마케팅하려는 일부 영업사원의 계획을 적어놓은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공정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의 심의 절차를 거친 임상연구비까지 리베이트라고 단정 지었다. 신약 개발사 범죄자 취급시판 후 임상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개발된 지 100년이 넘는 해열제 ‘아스피린’이다. 아직도 아스피린의 효능 연구가 활발하다. 이미 항혈전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엔 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최근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비만약 ‘위고비’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당뇨약으로 나왔다가 살 빼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약으로 주목받았고 글로벌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랐다. 비아트리스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 길리어드의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등은 연구자 주도 임상으로 치료 영역을 확장해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된 신약이다.
약의 쓰임새를 넓히려는 시판 후 임상이 보편화된 것은 이런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게다가 세상에 없던 신약 개발은 쉽지 않다. 신약 필수 관문인 임상시험을 통과해 당국의 승인을 얻어 출시될 확률은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을 동원해 기존 약물의 ‘몰랐던’ 가치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시판 후 임상이 더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공정위의 이번 리베이트 제재는 지나치게 인색한 조치였다. 시판 후 임상을 진행 중인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물론 신약 개발 의지까지 꺾을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