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기기에서 가상의 교사가 개념을 설명하고 증강현실(VR·AR)을 통해 공학과 과학을 실습하는 방식이 머지 않아 교육 현장에 뿌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교육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VR·AR, 블록체인, 로봇 등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에듀테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해서다.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에듀테크는 코로나19 시기 대면 수업의 대체재로 사용됐지만 점점 표준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업계가 맞춤 상품으로 변화를 이끌고 정부가 정책으로 지원하면서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교육 업체들 에듀테크 R&D에 매년 수백억 쏟아붓는다30일 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교육 업체들이 IT 기술을 적용한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웅진씽크빅은 '웅진스마트올'을 앞세워 에듀테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웅진스마트올은 500억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AI 학습 플랫폼이다. 진도, 학습 성과, 학습자 이해도에 따라 학습 레벨과 진도를 매일 맞춤형으로 편성한다.
웅진씽크빅의 독서솔루션인 'AR피디아'는 에듀테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란 평가다. AR피디아는 책 속 등장인물, 그림 등을 AR로 구현해 입체적인 시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태블릿과 책 세트로 구성됐으며, 단순히 화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가 직접 소방관이 돼 불을 끄거나 개구리를 해부하는 등의 실험을 3차원(3D)으로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웅진씽크빅은 IT 연구개발(R&D)에만 매년 300억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R&D 규모는 400억원에 육박했다. 전체 매출의 4.3%에 달하는 수준이다. 또 자체 에듀테크연구소를 운영하며 하루 평균 1억건의 학습데이터를 쌓았다. 최근 2년 동안 100명 이상의 정규직 개발자를 채용하며 본사 근무 직원 기준 50% 이상을 개발 인력으로 채웠다. 현재 총 48건의 에듀테크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업계 최대다.
교원은 2015년 종이 학습지와 태블릿PC를 결합한 '스마트 빨간펜'을 선보이며 에듀테크에 첫발을 뗐다. 1대 1 학생관리 등 학습지만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전용 스마트펜과 태블릿PC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교원은 메타버스와 AI 튜터를 구현한 초등 1~6학년 대상 전과목 AI 학습지 '아이캔두'도 서비스하고 있다. 비학습 데이터와 학습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집중도 향상 솔루션을 제공하고 AI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드백도 제공한다. 구몬 교재에 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구몬N'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지난해 에듀테크 R&D에 400억원을 투자한 교원은 올해 이를 500억원으로 늘렸다. 디지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AI-DX센터'를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교원은 연구 인력을 300명까지 늘렸다. 이밖에 대교, 천재교육, 미래엔, 비상교육, 금성출판사, NE능률 등 많은 교육 업체가 에듀테크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학생 수 줄면서 맞춤형 적응 학습 중요해져"과거엔 에듀테크 개념이 'e러닝'을 사용하던 것이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 확산되면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에듀테크가 전면에 부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엔 교사가 학생들의 숙달 정도를 고려하지 못한 채 1대 다(多)로 진도를 나가는 방식이었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어댑티브(맞춤형 적응 학습)'가 중요해졌다"며 "실험, 실기, 실습이 중요해지면서 실감미디어 필요성이 커진 것도 에듀테크가 확산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짚었다.
에듀테크가 교육계의 주류로 급부상하자 시장 규모도 커졌다.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는 국내 시장 규모가 2021년 7조3250억원에서 연 평균 8.5%씩 성장해 2025년 9조9833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교육산업 조사기관 '홀론IQ'은 2019년 1830억달러(한화 약 248조원)였던 전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가 2025년 4040억달러(약 548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국은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에듀테크 전략을 짜고 있다. 미국은 2017년 '국가 에듀테크 계획안'을 채택했고 유럽연합(EU)도 같은 해 '디지털 교육 행동 계획'을 수립했다. 일본은 2018년 '제3기 교육진흥기본계획'에 '교과 지도에서 ICT 활용' 내용을 포함했고 중국은 2018년 '교육정보화 2.0 행동 계획'으로 고등교육 과정에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학습 방식을 모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도 교육 현장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일반선택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계획이다. 2028년에는 대다수 학년·과목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에듀테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3년간 종이 교과서와 함께 사용하다가 2028년 전면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에듀테크를 새로운 수출 먹거리로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학교와 기업이 협력해 이른바 'K-에듀테크'를 해외에 진출시킨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18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 대책회의에서 '에듀테크 진흥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에듀테크 선도 교사를 현재 1100명 수준에서 2025년 35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학생 1인 1디바이스 환경도 조성한다. 지난 6월 기준 전국 초중고 학생의 디바이스 보급률은 58%다.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는 2025년 전까지 학생 1명이 1개의 디지털 기기를 갖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배 교수는 "에듀테크는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 정부가 교육 정책을 짤 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IT 강국인 한국이 빅데이터로 학생에 딱 맞는 맞춤형 교육 모델을 제시한다면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을 충분히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듀테크는 교육 시장의 블루오션업계는 에듀테크 산업이 이미 포화된 지 오래인 교육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블루오션'이라고 보고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학생 1인당 교육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10여년 전 강남권 학부모들이 첨단 교육 플랫폼 구독에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에듀테크가 뜬다는 입소문이 퍼졌다"며 "이제는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한 세대를 중심으로 학습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며 교육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