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영끌 대출’ ‘빚투’ 등 과도한 대출에 강한 경고를 하고 나섰다. 1863조원(지난 6월 말 기준)의 가계 빚뿐 아니라 2705조원(같은 기준)에 달하는 기업 부채는 코로나19 충격기 초저금리를 거치며 누적됐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불어난 게 아닌데도 갑자기 정색으로 경고장을 날리니 다소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가계 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 부채로 인해 겪은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고 공포감까지 조성했지만, 일련의 금융규제 완화로 부채 증가를 용인하고 일부 유도해온 것은 금융당국이다. 금융 정책은 거대한 항공모함의 방향을 전환하듯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계도 기업도 차분히 대비하며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가계 빚에 대한 경고 수위는 높았지만, 부채 수준의 정부 상황 진단은 옳다. 당장은 변동금리 대출규제 강화 정도가 정부·여당 간 대책으로 협의됐지만 규제 강도도 김 비서실장 말만큼이나 갑자기 세질 공산이 다분하다. 기업·가계 모두 허리띠를 단단히 좨야 한다. 급증한 부채는 금융 불안을 넘어 소비와 직결되고, 내수는 곧 투자와 연결된다는 점 때문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두 곳의 전쟁 등으로 ‘인플레이션 유령’이 세계적인 고민인 데다 미국은 정석대로 금리를 착착 올려 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행진이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코로나 쇼크 3년간 양적완화라는 명분에 따라 초저금리로 풀려나간 돈이 ‘돈값’을 못하는 사이 경제주체들 모두 빚 무서운 줄 모르게 됐다. 문재인 정권 때는 정부가 더했다. 이제 힘들어도 정상화에 나설 때다. 화폐가 화폐 구실을 하도록 시중의 돈이 회수되고 돈값(금리)이 올라가면 가계도 기업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처분소득의 1.6배에 달하는 가계 부채에 대한 이자 증가는 소비를 전방위로 위축시켜 경제가 더 침체할 위험이 있다. 엊그제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한 것도 이런 악순환이다.
고통을 견디며 내실을 다지는 게 정석이고 정공법이다. 가계부터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도 임금 인상 최소화 등으로 비용 효율화에 나설 때다. 정부 역시 효과 검증이 안 된 재정지출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고물가를 잡고 부채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의 세 주체 모두 단단히 각오하고 책임 있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 금융정책에서 정부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