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장안면의 식품 제조업체 늘푸른 공장 직원 60명 중 절반은 네팔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출신 일꾼이다. 이들은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한국인 중년 여성 근로자들과 절단, 세척, 가공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안상교 늘푸른 대표는 “제조 현장에서 근로자 국적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며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운영에 애로를 겪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한 경기 화성이 외국인 근로자들의 ‘멜팅폿’(용광로)으로 변모하고 있다. 인천 남동, 경기 반월·시화공단 공장들이 ‘남하’해 둥지를 틀면서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다국적 지역’으로 급부상했다.제조업체 수 1위로 일자리 많아26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에서 등록 외국인 수가 가장 많은 기초지방자치단체는 화성시로 현재 4만3550명이 공식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귀화인까지 포함한 외국인은 5만2000명으로 화성시민(97만 명)의 5.3%를 차지한다.
화성에는 전국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제조업체(2만758개)가 몰려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 비자(E-9)로 일하는 외국인 수도 2만346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등록 외국인을 기준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국적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기초지자체다. 시 관계자는 “전체의 94.2%에 달하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약 1만9000개) 대부분에 적어도 한 명 이상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안면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농업 지역이었다. 10년 새 장안면을 비롯해 양감면, 우정읍, 팔탄면, 향남읍 등 화성 동남부는 ‘외국인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지방도를 중심으로 공장과 외국인들이 사는 원룸촌, 이들의 점심을 해결할 ‘한식뷔페’가 있는 저층 상가건물이 속속 들어섰다.
이덕 화성산업진흥원 전략기획팀장은 “화성의 경제를 외국인 근로자가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외국인 덕에 지역경제 돌아가”화성은 2010년대 이후 제조업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경기 시흥·안산의 반월·시화공단에 있던 공장들이 2010년 전후로 땅값이 싼 화성 동부로 남하하면서부터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화성 반월동과 우정읍에 새 생산거점을 조성하면서 하청업체도 따라왔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모여들고 있지만 인력난은 여전하다. 화성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시내 제조업체의 구인 배수는 7.8에 달했다.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7.8배 많다는 얘기다. 불법 체류 외국인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모여드는 이유다.
다양한 외국인 근로자가 몰리면서 업종별 분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화성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사출, 금속 가공 등 섬세함이 요구되는 업종에선 동남아 근로자를, 건설·철강·부품처럼 몸을 쓰는 업체에선 몽골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등의 덩치 큰 근로자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향남읍에서 차 부품 특수도장 업체 에이테크를 운영하는 안효진 대표(49)의 직원 여섯 명 중 세 명도 외국인이다. 이 공장의 외국인 두 명은 각각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국적 고려인 여성으로 F-4(재외동포) 영주 비자를 취득,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과 화성에서 자녀를 키운다. 나머지 한 명은 지난 5월 입사한 아피쳇 손탓텐(26·태국)이다. 전문학사 학위가 있는 그는 태국에서 비교적 고임금인 월 1만1500밧(약 43만원)을 벌었다. 아피쳇은 “월급이 250만원가량이고 특근 수당을 합치면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며 “최대한 오래 한국에 머물면서 목돈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화성=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