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어제 선고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의 주심은 노정희 대법관이다. 이 사건은 2017년 11월 15일 대법원에 올라가 그해 12월 14일 고영한 당시 대법관에게 배당됐으나, 고 대법관이 2018년 8월 퇴임하면서 후임인 노 대법관에게 넘어갔다.
노 대법관부터만 따져도 판결이 나오는 데 무려 5년2개월이 걸렸다. 물론 간단히 결론을 도출할 사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법률적 장고를 해야 할 사안이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1심의 무죄 판결 논지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선고 논리는 대동소이하다. 1심 재판부는 “박 교수의 견해는 가치 판단을 따지는 문제”라며 “법원의 능력과 권한 밖의 것으로 사회의 장에서 전문가와 시민들이 자유롭게 상호 검증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노 대법관의 논지 역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모두 사법이 아니라 학문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에 대한 무죄 선고가 곧 그의 저술 내용이 모두 맞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조선인 위안부 대부분이 관리 매춘형이었다는 대목은 역사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에 대해서 반발하는 학자들도 적잖다. 그럼에도 그가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거나 명예훼손 의도가 없었던 만큼 무죄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 결론을 내는 데 그렇게나 긴 시간을 돌아와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퇴임 6일 전에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 허위 인턴증명서 작성 혐의로 최강욱 전 의원의 유죄를 확정했다. 노 대법관은 내년 8월 퇴임을 앞두고서야 이번 선고를 했다. 정치적 판단이나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사안은 최대한 미루다가 흡사 책상 정리하듯 처리하는 듯한 느낌이다. 재판의 지연은 어느 법조인 표현대로 “지루한 장마보다도 더 끈적”하다. 게다가 ‘선택적’이라면 악취마저 지독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