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다음번에 오시면 사우디에서 생산한 현대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4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 차량을 직접 운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다는 의미로 ‘미스터 에브리싱(Mr.Everything)’으로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가 윤 대통령을 직접 차량에 태우고 다음 일정 장소까지 운전해 이동하는 파격을 연출한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을 향한 빈 살만 왕세자의 행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 그 자체였다. 당초 윤 대통령은 이날 정오께 숙소인 영빈관을 출발해 사우디 마지막 일정인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포럼’ 행사장인 킹 압둘아지즈 국제 컨퍼런스 센터(KAICC)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영빈관으로 빈 살만 왕세자가 불쑥 찾아왔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 만남은 사전에 예정돼 있지 않았다. 두 정상은 23분간 단독으로 환담했다.
환담을 마친 뒤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함께 걸어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의 운전대는 운전기사 대신 왕세자가 직접 잡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빈 살만 왕세자가 외국 정상이 탑승한 차량을 직접 운전한 것은 지난 7월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방문 등 손에 꼽는다”며 “그만큼 윤 대통령을 극진하게 모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운전 중 빈 살만 왕세자가 윤 대통령에 건넨 말도 인상적이었다. 왕세자는 윤 대통령의 다음 방문을 기약하면서 ‘현대 전기차’를 직접 언급했다. 현대차가 사우디 현지에서 추진하는 전기차 공장에 대한 빈 살만 왕세자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현대자동차는 지난 22일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손잡고 5억달러를 투자해 사우디에 전기차 등 자동차 조립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2026년부터 연 5만 대의 전기차 등을 양산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 사우디가 같이 만든 전기차를 운전하고 싶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말은 농담이 아닌 절실한 바람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빨리 전기차가 사우디 땅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으로 생산되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런 염원이 담겼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빈 살만 왕세자와 윤 대통령은 15분간 이동해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포럼 행사장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과 행사장에 동반 입장한 왕세자는 윤 대통령이 연설과 대담을 진행하는 동안 발언을 경청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윤 대통령은 행사를 마친 뒤 빈 살만 왕세자와 작별 인사를 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포럼 참석을 끝으로 사우디 국빈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카타르로 이동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잡은 손을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고 당시 두 정상의 모습을 설명했다.
리야드=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