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재범 가능성이 높거나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출소 후에도 법원이 지정한 시설에서만 거주하게 된다. 정부는 거주지역을 강하게 통제해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반복되는 국민들의 불안을 진정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피 대상인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지정하는 것을 해당 지역 주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극복할 방안을 두고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출소한 조두순도 거주 제한 가능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을 26일 입법 예고한다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만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저질렀거나 세 차례 이상 성폭력범죄를 저질러 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한 사람 중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는 출소 이후 법원이 정한 곳에서만 살 수 있게 된다.
거주 장소는 지역별로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설 또는 신축해 거점 숙소를 만들 계획이다. 특정 지역에 수십 명의 고위험 성범죄가 함께 거주하는 숙소가 생기는 셈이다. 어떤 장소를 지정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감독을 받고 있는 전과자도 검사가 청구한 거주지 제한명령을 법원이 받아들이면 특정 지역에서만 지낼 수 있게 된다. 검사가 거주지 제한명령을 청구할 때 필요한 경우에는 관할 보호관찰소에 해당 전과자의 범죄 내역과 현재 직업, 재범 가능성, 거주지 주변 환경 등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미 출소한 조두순, 김근식, 박병화 등 유명 성범죄자도 거주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자장치 부착자 중 거주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고위험 성범죄자는 325명이다. 내년 출소 예정자 중 적용 대상자는 59명으로 추산된다. 주민 반발 불 보듯…첩첩산중 예고
법무부는 당초 검토한 초·중·고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 미성년자 교육시설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의 거주를 금지하는 방식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인구 밀집도와 교육시설 분포 현황 등을 고려했을 때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선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초·중·고교, 유치원, 어린이집만 해도 8000여 개(지난해 말 기준)로, 이들 간 평균 간격은 약 300m에 불과하다.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부족뿐만 아니라 도시 외곽 지역에 대한 차별 논란 가능성도 고려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미국은 12세 미만 아동 상대의 성범죄자가 학교와 공원으로부터 약 610m 이내 지역에서 거주할 수 없는 제시카법 도입 후 거주 가능지역이 부족해 고위험 성범죄자가 노숙자로 전락해 오히려 해당 지역의 재범 위험이 커졌다”며 “거리를 기준으로 하기보다 특정 거주지를 지정해 국가가 책임지고 적극 통제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정 지역에 고위험 성범죄자가 모여 지내는 일종의 ‘합숙시설’을 짓는 것을 해당 지역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고위험 성범죄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국가지정 주거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금은 성범죄자가 옆집에 있어도 알기 어렵지만 앞으론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쉬운 곳에 두기 때문에 재범 예방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의를 거쳐 주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