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운명 걸린 카카오 2인자의 '입'…두 달 만에 막 내린 씁쓸한 개혁 [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3-10-24 11:11
수정 2023-10-24 13:48
이 기사는 10월 24일 11:1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겸 창업자와 친밀한 인사들의 김 창업자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는 '호인(好人)'이다. 카카오가 재벌 반열에 오르며 거부가 된 그에게도 과거 인맥들이 이런저런 투자 제안을 들고 찾아왔다. 이를 냉정히 끊어낼 줄 몰라 상당수 투자금을 날리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는 게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김 창업자는 세금 계산서 발행 없이 현금을 내준 탓에 연말에 막대한 세금을 토해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을 챙기는 의리가 김 창업자 개인에겐 미담일 수 있었지만 144곳의 국내 계열사를 보유한 IT 공룡 카카오엔 '경영 리스크'가 됐다. 카카오가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고, 김 창업자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주요 CEO 인선이 그의 인맥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다. 대표적인 예가 김 창업자와 대학시절부터 같은 하숙집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로 알려진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백상엽 전 대표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역시 김 창업자와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형·동생 사이로 전해진다.

지금은 카카오를 떠난 남궁훈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외환위기 시절 서울 한양대 앞에 PC방을 창업했을 무렵부터 동업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카카오게임즈 대표와 카카오 대표를 거친 그는 카카오 주가가 15만원까지 오를 때까지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 약속했지만 퇴사하면서 94억원의 스톡옵션 행사 대금을 챙겼다. 성과 기반해 부상한 신권력이처럼 김 창업자를 중심으로 끈끈한 '동아리 문화'가 이어진 카카오 CEO 문화에서 배재현 투자총괄 대표(사장)는 이질적인 캐릭터였다. CJ그룹 미래전략실 부장으로 투자역 중 막내급이던 배 사장은 2015년 카카오로 적을 옮긴다. 그를 중심으로 꾸린 5명 남짓한 '빅딜 팀'은 이름 탓에 주요 대기업과 IB 사이에서 조소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2016년 1조8700억원을 들여 음원서비스 1위 업체인 멜론을 인수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당시만 해도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멜론은 안정적 캐시카우로 자리잡으면서 카카오의 사세를 불려준 1등 공신이 됐다.



이후 카카오모빌리티 설립, 1조원 규모 지그재그 인수, 이베이코리아와 넥슨 인수 검토 등 카카오 내 모든 거래들이 배 대표를 거쳤다. 화려한 투자은행(IB) 경력 없이도 '실행력' 하나 만으로 김 창업자의 신임을 샀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 카카오의 확장 전략을 이끌며 초고속 승진 가도를 밟았다.

카카오 내부에선 배 대표의 입지가 굳혀지자 구권력과 신권력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움직임도 관측됐다. 배 대표가 '스톡옵션 먹튀'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경질에 총대를 맨 것이 대표적이다. 류 대표는 "퇴사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김 창업자도 이를 옹호했지만 그룹 전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배 대표의 설득으로 마무리됐다.

한 때 1조 유니콘을 자신하던 카카오엔터프라즈의 구조조정을 지휘한 인물도 배 대표였다. 당시 대표였던 백 대표가 경영 실패에 책임을 지는 대신 고문역으로 영전하자 카카오 내부 직원들은 백 대표를 인맥으로 비호한 김 창업자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카카오가 공동체(그룹) 전체의 전략을 수립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조직인 CA협의체 수장으로 배 대표를 앉힌 것도 누적된 김 창업자 측근 중심의 구권력에 대한 견제의 일환이었다. 계열사 대표와 CFO에 자율적으로 맡겼던 상장 및 M&A 결정들이 구설수에 오르자 그를 통해 일원화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동안 카카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칼잡이'형 CEO의 탄생이었다. CEO는 물론 팀장급까지도 실력보단 김 창업자와 인맥을 강조해오던 카카오의 고질적 병폐를 수술할 인물로 기대를 사기도 했다. 두 달 천하로 끝난 개혁...PEF 유착에 발목잡혀카카오의 고질적 문제를 끊어내려던 배 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모펀드(PEF)와의 유착이었다. 법원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PEF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SM엔터의 시세를 조종했단 혐의로 배 대표를 구속했다. 김 창업자도 피의자 신분으로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았다.

PEF 업계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최근 몇 년 간 카카오 임직원들과 두터운 인맥을 내세운 소수의 PEF들이 카카오 계열사 딜을 독식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홍콩계 앵커에쿼티파트너스와 국내 원아시아파트너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원아시아는 주요 공제회 연기금을 찾아다니며 돈을 구할 필요 없이 고려아연의 돈으로도 수천억대의 투자가 가능했다.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과 김태영 원아시아파트너스 사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인맥으로 이어진 인맥이 뒷받침됐다. 원아시아가 하이브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800억원을 투입해 주가를 끌어올려 이를 무산시킨 '실탄'도 전부 고려아연에서 나왔다.

업계는 카카오모빌리티 매각이 홍은택 당시 카카오 대표의 반대로 실패하자 배 대표가 SM엔터 인수로 성과를 보이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이 시세 조종과 유착 관계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만큼 배 대표가 카카오의 사내이사와 주요 임원에서 물러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배 대표가 사임할 경우 김 창업자의 가신들로 구성된 구권력이 다시 카카오의 경영진으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모든 눈은 배 대표를 향해 있다. 김 창업자의 운명이 그의 '입'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카카오 및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SM엔터 투자와 관련한 보고는 문서 없이 김 창업자에 구두로 보고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8월 압수수색 과정에서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수사당국 입장에선 배 대표의 진술 등을 얻어내는 것이 김 창업자로 수사를 확대할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