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저출산에도 아동복 시장 웃는 이유…'텐 포켓' 열렸다

입력 2023-10-21 17:01
수정 2023-10-21 17:02

합계출산율 0.7명(2분기 기준)의 역대급 저출산 현상에도 최근 아동복, 특히 고가 아동복 시장은 순항하는 분위기다. '귀한' 아이를 위해 온가족에 더해 지인까지 열 명의 지갑이 열린다는 이른바 '텐 포켓' 소비 트렌드 영향으로 풀이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은 올 들어 고가 아동복 매장을 확충하고 나섰다. 그 결과 명품 브랜드 펜디, 겐조, 디올(크리스찬 디올), 버버리, 몽클레르 등의 아동복 라인을 서울 백화점에서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됐다.


올해 2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문을 연 '베이비 디올' 매장은 프랑스 디올의 아동복 라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최대 매출 점포인 강남점에 지난 2월 프랑스 유아동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아뜰리에슈' 국내 첫 팝업 매장을 시작으로 고가 유아용품 장르를 확충했다.

명품 브랜드는 아니나 최근 해당 점포와 롯데백화점 잠실점에는 첫 ‘파타고니아 키즈 모노 스토어’(이하 키즈 모노 스토어)가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첫 키즈 전문 매장 시도가 국내에서 이뤄졌기 때문. 파타고니아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월가 직장인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꼽힌다. '뽀글이'로 불리는 대표 제품 플리스는 실리콘밸리·월스트리트의 교복으로 통한다.

이같은 브랜드 이미지와 함께 꾸준히 지속 가능성을 강조해온 덕분에 '착한 아웃도어'로 인식되면서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최우혁 파타고니아코리아 지사장은 "(키즈 모노 스토어가) 파타고니아 해외진출 국가 중 최초일 뿐 아니라, 국내 유통되는 수입 아웃도어 브랜드 중 최초의 매장"이라며 "한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키즈 모노 스토어를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아동복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랜드리테일로부터 최근 물적분할된 이랜드글로벌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매출 300억원을 거둔 유럽풍 아동복 브랜드 '밀리밤'을 2025년까지 1000억원 브랜드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밀리밤 외에도 아동복 '더데이걸', '유솔' 역시 연매출 1000억원을 목표로 달린다.

이랜드글로벌은 아동복과 영캐주얼, 남성복, 숙녀복 등 30여 개 패션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브랜드는 없다. 밀리밤이 지난해 연매출 3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10월18일 기준) 400억원의 매출을 거두면서 매출 성장 브랜드 1순위로 꼽기로 한 것. 이랜드글로벌 관계자는 "밀리밤이 MZ(밀레니얼+Z)세대 엄마들이 선호하는 유럽풍 감성과 브랜드 고유의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며 "밀리밤에 이어 더데이걸, 유솔 역시 2년 내 연매출 1000억원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고가 아동복 시장에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어 관련 시장이 고성장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아동복 시장 규모는 1조2016억원으로 2020년(9120억원)보다 31.8%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전체 패션 시장이 40조3228억원에서 45조7790억원으로 13.5% 증가한 것보다 두 배 넘게 성장세를 보인 것.

출생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가족과 지인들이 아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가 제품 구입에 나서 불경기 속 아동복 시장이 전체 패션시장 성장률을 웃도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컨설팅기업 매킨지도 국내 키즈산업 규모가 2012년 27조원에서 2025년 58조원으로 2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실제로 올해 불경기 속에서도 백화점의 아동복 매출 흐름은 양호한 흐름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백화점의 아동·스포츠 상품군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보인 달은 세 달에 그쳤고, 감소폭도 1% 이하였다. 지난해 연간 매출이 23.9% 뛰어 백화점 전체 상품군 중 가장 큰 폭의 매출 성장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선전한 셈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증샷 문화에 익숙한 MZ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가족 구성원이 같은 브랜드의 제품으로 맞추는 '패밀리룩', '시밀러룩'을 연출하는 트렌드가 나타나 당분간 수요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톰브라운을 운영하는 삼성물산의 표유경 해외상품1팀장은 “수년간 'VIB(베리 임포턴트 베이비)', 텐포켓 족에 대한 트렌드가 지속되면서 키즈 명품에 대한 소비자 태도가 긍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며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젊은층 부모가 아이와 함께 브랜드를 경험하고, 패밀리룩을 통해 가족 정체성을 높이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