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만 명. 지난해 국내 ‘빅5’ 병원에서 원정 진료를 받은 다른 지역 환자 수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을 일컫는 빅5 병원은 과거 의료계 은어였다. 하지만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가 됐다. 타지역 환자들이 빅5 병원에서 쓴 건강보험 진료비만 연간 2조1822억원이다. 2013년 9103억원에서 10년 만에 140% 증가했다. ○작년에만 71만 명이 ‘원정 진료’
보건복지부가 1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은 전국 국립대병원의 평균 역량을 빅5 병원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력과 재원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국내 14개 시·도에 17개 국립대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최전방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서울 등으로 환자 쏠림이 계속되는 데다 민간·사립대병원과의 의료 격차가 벌어지면서다. 국립대병원은 국가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기 때문에 의료 장비를 보충하거나 인력을 충원하는 데도 제약이 컸다.
지방 의료 사령탑이 무너지자 응급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제시간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한 중증 ‘응급실 뺑뺑이’ 환자는 연간 14만 명에 이른다. 서울 지역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률은 38.6명이지만 강원 지역은 49.6명에 이른다. 지역 간 의료·건강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국립대병원 규제 대폭 완화국립대병원은 인건비를 매년 1~2%밖에 올리지 못한다. 예산 제약 때문에 지난해 필요한 인력의 37%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복지부는 이들의 인건비, 인력 정원 규제 등을 풀기로 했다.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중환자실, 응급실 병상과 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외상, 분만 등의 필수의료센터 개설도 돕기로 했다. 국립대병원들이 진료 과정에서 생긴 아이디어를 토대로 연구 역량을 강화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ARPA-H 프로젝트 등을 활용해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한다.
국립대병원 진료시설과 장비의 25%까지만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풀어 최대 75%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팬데믹 등의 비상상황에선 국립대병원이 해당 지역 의료 인프라를 종합 관리할 수 있도록 거점 기관 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국립대병원이 없는 인천과 울산은 사립대병원에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등을 연결해 인력을 교류하고 전자의무기록(EMR)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서울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를 국가중앙의료네트워크로 연결해 국가중앙병원 역할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 관할인 국립대병원은 복지부 관할로 바꾸기로 했다. ○“정원 확대로 의사 공급 늘릴 것”의대 정원도 확대한다. 늘어난 의사 인력이 지방 곳곳으로 퍼질 수 있도록 20~40% 정도인 지역인재 선발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필수 진료과목의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의사들의 법적 책임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복지부는 국립대병원 등과 지역·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재정 투입 계획은 오는 11월께 발표될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공개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1년간 1조원 규모의 수가가 이 분야에 추가 투입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