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사진)은 18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만났다. 지난 8월 22일 한경협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경제단체장을 제외하고 관료지만 산업계 인사와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재계 맏형’ 자리를 복원하려는 한경협 회장에 취임한 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한경협으로 간판을 바꿔 단 지도 한 달이 지났지만 류 회장이 공식 행사에서 국내 기업인들과 만난 적은 아직 없다. 류 회장의 이날 저녁 일정도 필 머피 미국 뉴저지주지사 환영 리셉션 행사 참석이었다. ○회장은 해외에, 부회장은 “공부 중”
재계에 따르면 류 회장이 한경협 회장으로 취임한 후 FKI타워에 출근한 날은 이날을 포함해 열흘에 불과했다. 대부분 경제단체장과 만나거나 방한한 외국 인사들을 접견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그 외 30여 일은 한경협 회장이나 풍산그룹 회장 자격으로 해외 출장을 떠나 국내를 비웠다.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에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해외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아직 류 회장을 공식적인 행사에서 본 적이 없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국제통을 표방한다고 하지만 한경협 회장과 만난 기업인이 별로 없다는 건 문제”라는 반응이 많다. 당초 한경협 회장에 류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렸을 때도 이런 우려는 나왔다. 이때마다 한경협은 “상근부회장이 국내 업무를 맡고, 류 회장은 한국 기업인을 대표해 해외 쪽 일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상근부회장에 임명된 인사는 외교부 관료 출신인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였다. 류 회장과 서울대 영문학과 동기인 김 부회장 역시 아직 기업인과 공식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다. 한경협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임명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현재는 내부 업무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할 쇄신 행보가 없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조직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새 출발한 한경협이지만, 한 달이 돼 가도록 쇄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한경협이 내놓은 건 8월 임시총회 때 발표한 윤리헌장 제정과 지난 17일 공식 출범한 윤리위원회가 전부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윤리헌장 제정과 윤리위 구성 등은 과거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때 발표한 개혁안의 후속 작업”이라며 “윤리위의 권위도 예상보다 많이 낮아진 것 같다”고 했다. 윤리위 위원은 5명으로,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비상근이다. 위원장에 선임된 목영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비롯해 CJ그룹 ESG자문위원장, 한진그룹 윤리경영위원장 등도 맡고 있다. 한경협 윤리 혁신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경협에 재가입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 등도 쇄신 작업을 더 지켜보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4대 그룹의 회비 문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병준 직무대행 시절 전경련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섭외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라도 있었다”며 “류진호(號) 출범 이후에는 재계 맏형으로서 개혁적인 행보가 안 보인다”고 했다. 이어 “네이버 등 신규 회원 유치 노력보다 한경협이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