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이었다. 코로나19에 탈원전 정책, 조선업 불황까지 겹치며 순식간에 적자의 늪(2021년)에 빠졌다. 일감이 줄어 직원들이 떠나려던 절체절명의 위기 때, 다행히 수출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수년간 공들여 온 해외 시장 개척이 빛을 발하면서 흑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 적자 2년 만인 올해엔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눈앞에 뒀다. 1964년 설립 이래 59년간 '볼트·너트'(체결류) 한우물을 파온 화신볼트산업 얘기다.
화신볼트산업은 길이 2m, 무게 2톤(t) 등 대형 특수 볼트와 너트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강소기업이다. 원자력 등 발전설비, 석유·가스 등 해양 자원 발굴에 필요한 해양 플랜트, 잠수함 등 고온·고압 및 심해와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 사용되는 체결류가 주력이다. 정순원 화신볼트산업 대표는 "단 한 번의 품질사고가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어 품질 안정성이 최우선 된다"며 "영하 100도, 섭씨 1650도, 100일간 계속되는 진동 등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야 공급할 수 있다"고 18일 밝혔다.
극한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 발전 설비 분야에서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해양플랜트 시장에선 미국 카메론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대형 조선사들과 지멘스, 미쓰비시에도 체결류를 공급한다. 정 대표는 "먼저 찾아와 공급을 의뢰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 연간 매출은 600억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정 대표 부친인 고(故) 정교채 창업주가 1964년 부산 범일동에서 회사를 창업한 이래 최대 실적이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볼트와 너트를 모아 팔며 시작된 회사에서 정 대표는 특수 볼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공을 들였다. 정 대표 장남도 최근 입사해 현장을 배우는 등 3대가 볼트·너트 외길을 걷고 있다.
해외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9년 30%선이었던 수출 비중은 작년 70%에 이어 올해 80%대로 불어났다. 수출을 대폭 늘려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정 대표는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로부터 '한국을 빛낸 무역인상'을 받았다.
정 대표는 내년부터 회사가 한층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년간 부진했던 원자력 발전 분야 매출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그는 "원전은 내년부터 물량이 나올 것"이라며 "원자재를 미리 확보하고 멈췄던 설비를 재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