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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로 인해 러시아에 유리한 국제 정세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동시에 지원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데다가 치솟는 유가가 유럽 국가들의 경제를 위협하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공격하며 시작된 전쟁은 미국의 주요 지정학적 라이벌들에게 이득이 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관심이 다시 중동에 쏠리면서 러시아가 가장 수혜를 보는 나라가 됐다고 WSJ은 분석했다. 그간 우크라이나에 집중했던 지원을 이스라엘에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가르비엘리우스 랜드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러시아는 이 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를 최대한 오래 지속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그들의 전술·전략적인 입장을 강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까지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무기 종류는 겹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스라엘은 충돌 발생 직후 미국에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에 필요한 요격용 미사일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당장 필요로 하는 155㎜ 포탄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스라엘이 2014년 가자지구 침공 당시 155㎜ 포탄을 약 1만9000발 사용한 적 있는 만큼 잠재적으로 지원 품목이 겹칠 가능성도 있다. 카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중앙정보부 중장은 현지 언론을 통해 "분쟁이 계속되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해야한다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중동산 유가가 출렁이는 것도 러시아에게는 호재다. 미국 등 서방이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경제 제재한 이후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끊고 중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동 유가가 오르면 지난해 이례적으로 따뜻한 겨울로 에너지 위기를 모면한 유럽이 올해는 힘겨운 겨울을 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나가자는 유럽 국가들의 의지도 흔들릴 수 있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발생하고 있는 참상을 우크라이나 전쟁 중 발생한 범죄행위를 덮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를 2차세계대전 중 나치가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한 데 빗대며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하여 그들 모두가 고통을 겪어야한다. 누구도 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가자 지구에서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긴급하게 대피해야하는 데도 모든 서방 파트너들은 부끄럽게도 침묵하고 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도시 중 하나를 대피하라는 요구를 할 경우에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라고 비꼬았다. 로이터·WSJ 등 외신은 이를 마리우폴·바흐무트 등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가 저지른 수천 명의 민간인 학살 범죄에 대한 비판을 돌리기 위한 발언이라고 짚었다.
이번 전쟁으로 혜택을 볼 다른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도 미국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중국은 그간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측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냈다. 앙투안 본다즈 파리 전략연구재단 중국 전문가는 "중국은 미국을 불안정의 요인으로, 중국을 평화의 요인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중국의 목표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신을 대안으로, 그리고 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일대일로를 위협할 수 있는 미국 주도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계획 역시 이번 전쟁으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