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빠르게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산업개혁을 통해 재도약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5년간은 대한민국 산업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섰다고 보고 100조원대 자금을 미래 기술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며 “산업은행이 투자 프로젝트를 이끄는 특공대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산업은행은 22년을 끌어온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매각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HMM과 KDB생명 매각 등의 숙제를 안고 있다. 본점 부산 이전 문제로 내부 구성원의 동요도 적지 않다. 안팎의 중대한 과제를 마주한 강 회장은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산업은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산업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0년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세계 2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일본은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그렇습니다. 작년까지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2%였는데 올해와 내년 2년 평균이 1%대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저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가 산은에 올 때 다짐한 가장 큰 목표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는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등을 추진하는데 추가로 산업개혁도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지요.
“세계는 지금 이른바 경제안보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국가를 지키는 시대입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중국식 산업정책을 미국과 유럽이 따라가는 형국이죠. 한국도 첨단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 정부는 재정건전성에 집중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산업은행입니다. 산은이 5년 동안 연 2조원씩 자본금을 늘리면 10조원이죠. 그러면 100조원의 대출 여력을 확보합니다. 이걸 한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산업과 기술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합니다.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원전 같은 부문에서 초격차를 내야 합니다.”
▷산업은행에 그런 여력이 있습니까.
“산은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이 이 부분입니다. 한국 경제의 마지막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하는 산은이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재정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지난 1분기 13%대로 떨어졌습니다. 2분기에 대우조선해양 매각 효과와 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14%를 겨우 맞췄지만 여전히 불안합니다. 한국전력(지분율 33%) 적자가 지속되는 한 손실이 쌓이는 외부 요인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산은 지분 100%를 보유한 정부와 배당 규모를 조절하는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실적이 외부 요인에 따라 출렁이는 걸 줄이기 위해서도 하반기 예정된 주요 매각 건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다소 민감할 순 있지만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 시도는 경제학적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오기 전 이미 무산됐지만 두 회사 합병은 산은 자체의 결정이 아니라 외부에서 결정한 것을 산은이 수행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결정이 비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는 중대한 외부 리스크입니다. 재정안정성이나 정책 결정 측면에서 산업은행은 보기와 달리 굉장히 취약할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산은이 항공사 합병의 주체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독점 심사가 관건인데, 대한항공이 이달 말까지 마지막 제안서를 낼 예정입니다.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산은은 항공사 합병에 산업 경쟁력, 소비자 후생, 공적자금 회수라는 원칙을 갖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HMM 인수 후보에 대해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새우가 고래를 먹으려 한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수합병(M&A)이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사는 건 아닙니다. 그 반대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HMM이 가진 대규모 현금은 일시적인 부분입니다. 그걸 제외하면 인수 후보자와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고래와 고래의 대결로 봐야 합니다. 또 인수 후보자가 컨테이너선 운영 경험이 없어서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요, 그건 인수하지 말라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입찰한 회사들은 각자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그건 최종 입찰 때 판가름하면 됩니다. 벌써 자격이 안 된다고 하는 건 적절치 않아요.”
▷부산 이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수도권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부산을 둘러싼 동남권은 한국 경제의 기반인 제조업이 있고요. 동남권 제조업에 디지털전환을 접목하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부산 사람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말을 합니다. 청년은 없고 노인만 있고, 산업은 없고 바다만 있다는 자조적인 표현이죠. 한국 2위 도시가 이렇다면 다른 도시는 오죽할까 싶습니다. 산업은행이 간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산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부산 이전 문제로 구성원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부산 이전은 산업은행법을 개정하는 단계까지 진행됐습니다. 우리 손을 떠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국회 논의를 잘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꼭 부탁하고 싶은 건 내부 갈등을 줄이자는 겁니다. 부산 이전 업무를 맡은 직원들을 왕따시킨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 직원도 우리 구성원이라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데, 현재 기준으로 평가를 해주십시오.
“현 정부의 핵심 가치는 공정과 자유입니다. 경제 문제는 운영 주체가 민간이며 정부의 역할은 각종 개혁으로 지원하는 거죠. 재정건전성 부분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규제 완화나 각종 개혁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죠.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조금씩 성과가 나올 겁니다. 각종 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에 막혀 있는 점도 아쉽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거취에 대해 다양한 예상이 나오는데요.
“언론에서 경제부총리 후보군에 넣어주던데요.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주위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산은에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할 생각입니다.” 강석훈 회장은…대우조선해양 매각 취임 1년 만에 해결
학계·정계 인맥 두터워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부산 이전 이슈만 없었다면 역대 최고 최고경영자(CEO)가 됐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 직원들이 부산 이전에 반대하면서 소통이 원활하진 않지만 성품과 능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국책은행을 이끌 적임자라는 이유에서다. 22년 동안 전임 산은 수장들이 해결하지 못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매각을 취임 1년도 안 돼 성사시키는 성과를 낸 게 대표적이다.
강 회장은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배격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개인과 사회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1987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7년부터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대 대통령선거 공약을 만들면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방안을 공약에 포함하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일 때 이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게 가장 인상적인 활동으로 꼽힌다. 2016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에 발탁돼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등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학계와 정계, 재계에서 쌓은 두터운 인맥이 강점이다.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 정책특별보좌관을 맡았고, 지난해 6월 산업은행 회장에 선임됐다. 강 회장은 국내 스타트업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 강석훈 회장 프로필
△1964년 경북 봉화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제19대 국회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책특별보좌관
△산업은행 회장
강현우/최한종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