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이 발달한 동시에 제품 대부분을 수출하기 때문이죠. RE100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국은 세계 경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지난 6일 서울 흥인동 서울스퀘어에서 만난 헬렌 클라크슨 더클라이밋그룹 대표의 진단이다. RE100이 한국 같은 제조업 기반 국가에 ‘무역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하기보다 새로운 기회로 보고 적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영국 민간단체 더클라이밋그룹은 세계 무역 질서를 뒤바꾸고 있는 RE100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 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이 캠페인에는 구글, 애플, 제너럴모터스(GM) 등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동참했다.
참여는 기업의 자유지만 수출기업에는 가입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됐다.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정부가 탄소세를 부과하자 해외 고객사들이 한국 기업에도 RE100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SK그룹,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 35개 기업이 가입했다.
클라크슨 대표는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한국도 충분히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도 해상풍력 발전이 가능하다”며 “한국은 해상풍력만으로 연 624기가와트(GW)를 생산할 역량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양광 패널은 옥상, 저수지, 농경지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며 “가장 큰 걸림돌은 부족한 땅 면적이 아니라 복잡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국 지방자치단체 57%에는 주거지와 도로에서 멀게는 1㎞ 이상 떨어진 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도록 하는 이격거리 규제가 있다. 이 규제를 100m로 완화할 경우 2030년엔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총발전량인 622테라와트시(TWh)의 절반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규제 완화를 위해 지자체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클라이밋그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지자체들의 모임인 ‘언더2 연합’을 꾸린 이유다. 클라크슨 대표는 “지자체는 규제를 만들고 없애거나 세금을 높이는 권한을 가진 동시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도 자세히 안다”고 말했다.
국내 지자체 중엔 경기도와 충청남도가 언더2에 가입했다. 경기도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기업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로 올릴 계획이다. 유휴 부지를 개발해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산업단지 입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재생에너지를 설치한 산단에 혜택을 줄 방침이다.
클라크슨 대표는 지자체가 탄소중립을 이끈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꼽았다.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부터 휘발유 등 내연기관 기반의 신차 판매를 금지했다. 그는 “지자체가 기업들에 확실한 시그널을 준 셈”이라며 “기업도 비효율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지 않은데, 전기차로 넘어갈 확실한 이유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