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침공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스라엘군은 주민 절반에 달하는 110만명에게 대피를 요구했지만, 하마스의 만류 속에 가자지구 북부 일부 주민 만이 피란길에 올라 참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110만명 남쪽으로 대피령…하마스 만류에 고작 수만명만 이동
14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110만명에게 전날 남쪽 대피령을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며칠 내 가자시티 내 대규모 군사작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격렬한 시가전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했다.
유엔은 24시간 내 이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시한을 전날 0시 직전에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은 이스라엘 통보 이후 이날 현재까지 남쪽으로 이동한 주민이 수만 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 사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하루 새 25% 늘어 42만명을 돌파했다.
국제사회는 큰 우려를 드러냈다. 대피 시한이 촉박해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교전 속에 대규모로 살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인간방패' 전술을 꺼내 들 듯 이스라엘의 대피령을 선전전으로 일축하고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라고 요구했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대피령이 주민 110만여명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위기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며 민간인 보호를 호소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필시 인도주의적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비극을 재앙으로 바꿀 수 있는 조치"라고 밝혔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도 "가자지구의 무제한적 파괴가 끔찍한 테러 때문에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최대 우군인 미국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이스라엘의 과격한 결정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 대처가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하마스를 공격할 때 전쟁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가자지구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지대 설치 방안을 이스라엘, 이집트와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는 가자지구 남부와 맞닿은 이집트의 라파 국경을 개방해 민간인 대피를 돕겠다는 구상이다. 가자지구 보건청에 따르면 이날까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 1900명이 숨지고 7696명이 다쳤다.이스라엘 "하마스 해체 군사작전 치명적이고 강력할 것"
이스라엘이 경고한 시한 24시간은 연기될 조짐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안다"며 애초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하마스 해체를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의 단호한 보복 목소리는 이어졌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하마스에 대한 군사 작전에 대해 "길고, 치명적이고, 강력하며,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전례 없는 힘"으로 적을 공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4시간 동안 가자지구 내에 억류된 인질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한 수색 작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대규모 지상전을 준비하기 위한 국지적 작전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군인과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최소 150명을 인질로 납치해갔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국적자들을 포함한 이들 인질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없이 공격할 때마다 인질 한명씩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하마스에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서 실종된 미국인 14명의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이날 CBS방송의 시사 인터뷰 '60분'에 나와 "인질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북부 국경에서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와 교전하는 등 2개 전선에 대처하고 있다.
이번 분쟁은 요르단 서안과 동예루살렘에서도 커지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 지역에서 이스라엘측의 충돌로 이날만 팔레스타인인 16명, 일주일 새 51명이 사망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는 가자지구 연대 시위가 열렸다. 이스라엘군이 이날 이슬람 사원에 팔레스타인인의 접근을 제한하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