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투자 ‘혹한기’가 길어지고 있다. 벤처캐피털(VC) 신규 투자는 반토막 났고,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솎아내기에 들어간 바이오 기업도 적지 않다. 투자업계에선 “내년 상반기 이후부터 국내 바이오 시장이 기지개를 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구조적으로 외부 투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업종이다.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최소 10년을 잡아야 할뿐 아니라 전임상(동물실험)에 이어 임상 1·2·3상을 거칠 때마다 드는 돈이 배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임상 1상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자금은 약 150억원, 2상 500억원, 3상 1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장기화되는 돈맥경화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올 6월까지 바이오·의료 분야에 들어온 VC 신규 투자는 3665억원에 불과하다. 전년 동기(6758억원) 대비 45.8% 감소한 수치다. 2021년만 해도 바이오·의료 신규 투자는 연간 1조6770억원에 달했으나 해당 금액은 지난해 1조105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8000억원도 넘기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기술이전(LO)을 1조원어치를 해도 5년 지나면 금고가 다시 부족해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VC 투자는 처음 기업을 설립하는 단계의 극초기 투자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임상에 들어가고 꼭 자금이 필요한 단계가 되면 시들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고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쳐 VC 투자 자체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감소세”라며 “상장 후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 문제도 (돈맥경화에) 영향을 적지 않게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파이프라인 정리에 들어간 기업도 속속 나오는 중이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두어차례의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 등의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제넥신 역시 단장증후군 치료제 개발을 지난달 자진중단했다.
한 세포치료제 개발 기업 대표는 “준비 중인 파이프라인이 여러개지만 현실적인 자금 상황 때문에 하나가 완료될 때까지 다른 걸 동시에 개발하는 건 꿈도 못꾸는 상황”이라며 “시기를 맞춰 임상을 하고 시장에 내놔야 시너지가 나는 것을 뻔히 알지만 대형 제약사(빅파마)처럼 R&D를 이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고 전했다.
VC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 이후를 반등 시점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이오 프로젝트 펀드를 굴리고 있는 VC업체 대표는 “올해 말까지도 투자는 좀 어렵겠지만, 이제 천천히 암흑기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기”라며 “거품도 빠졌고,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어디인가에 대한 평가도 내려졌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부터는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작년에 상장하지 못했던 (바이오) 기업들을 한국거래소에서 기술특례 상장으로 많이 검토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대형 제약사들이 바이오 기업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제한적이었던 비즈니스 딜도 정상화됐다”며 “내년부터는 상장, 투자가 모두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암흑기를 버티기 위해 작은 바이오 벤처들은 ‘공동개발’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혼자 임상을 끌고가기 힘들다면 보다 몸집이 큰 제약사와의 협업을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물론 후보물질이 좋아야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라고 말했다. 이어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간의 인수합병으로 시가총액을 키우고 누적자금을 활용하는 것도 활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2일 15시 42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