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항원을 담는 부재료로 여기던 면역증강제(아주번트) 역할이 바뀌고 있다. 이를 활용해 효과를 높인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다. 올 들어 국내에 도입된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 호주 CSL시퀴러스의 독감백신 ‘플루아드쿼드’ 등은 면역증강제를 주재료로 내세우고 있다. 국내 기업도 기술 개발에 나섰다.
막 오른 올겨울 백신 시즌10일 업계에 따르면 11일 만 75세 이상 고령층부터 독감 국가 예방접종이 시작된다. 오는 19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데다 올해부터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상포진 백신까지 늘면서 본격적인 백신 시즌의 막이 올랐다.
올해는 일성신약에서 공급하는 플루아드쿼드가 국내 민간 독감 백신 시장에 처음 진입했다. 상어알로 잘 알려진 스쿠알렌 성분의 면역증강제 ‘MF59’를 활용해 만 65세 이상 고령층 대상 효과를 20% 정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원 위험은 10% 넘게 낮췄다.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공급된 싱그릭스는 높은 효과를 무기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인삼 성분으로 알려진 사포닌 등을 포함한 면역증강제 ‘AS01’을 활용해 만 80세 이상 예방률을 91%까지 높였다. 기존 백신의 만 80세 이상 예방률은 18%에 불과했다. 업계에서 ‘면역증강제가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던 대상포진 백신 시장에 다시 숨통을 불어넣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이유다. 알루미늄에서 핵산으로 진화백신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체와 비슷한 항원을 몸속에 넣어 면역계를 학습시키는 도구다. 면역체계가 미리 적군의 모양과 공격 양상을 예습한 뒤 실제 적군이 오면 공격하도록 돕는다.
몸속 면역 반응을 활용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층에는 효과가 낮아진다. 효과를 높이려 항원을 무한정 많이 투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면역 거부 반응이 생겨 다른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질병 예방을 위해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했다가 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백신의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는 ‘안전성’이다.
면역증강제는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적은 항원으로도 효과를 높일 수 있어서다. 이런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1926년이다. 백일해, 디프테리아 등의 항원을 넣어도 면역계가 잘 반응하지 않자 ‘적군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알루미늄 성분을 활용했다.
2010년께부터 면역증강제가 본격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면역자극 물질 등을 투여하면 면역 반응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입증되면서다. GSK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서바릭스’에 활용된 ‘AS04’, 독감백신에 쓰인 ‘MF59’ 등이다. 이후 AS01과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에 쓰인 ‘매트릭스M’ 등을 통해 시장이 열렸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도 개발 중최근엔 면역증강제가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 효과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나왔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지난달 mRNA 백신을 만들 때 면역반응을 높여주는 특정 단백질(C3d)을 함께 만들도록 설계하면 항체가 10배 많이 생성된다고 발표했다.
국내 기업도 개발에 나섰다. 차백신연구소는 이중가닥 리보핵산(RNA) 등을 활용해 면역반응을 깨우는 면역증강제 ‘엘-팜포’를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대상포진, B형간염, 독감 백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암백신으로도 활용을 넓히고 있다. 올해 8월 엘-팜포로 만든 암백신을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투여하면 T세포 면역원성이 25배 넘게 증가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바이오로직스도 면역증강제를 활용해 대상포진 백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출시된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엔 AS03이 활용됐다. 매트릭스M 도입을 추진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독자적인 면역증강제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