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자세를 유지하실 거라면, 사퇴를 하시든가요."
지난 5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도중 초유의 '후보자 퇴장'을 부른 한 마디는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의 이 말이었다. 김행 후보자의 답변 태도와 권 위원장의 발언을 둘러싼 이날의 '후보자 퇴장 사태'를 두고 여야는 10일 '네 탓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던 청문회가 '파행' 급물살을 탄 것은 김 후보자의 자녀 재산 문제가 나오면서부터다. 청문회 파행 10분 전으로 돌아가 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김 후보자를 향해 '딸과 사위를 통해 재산을 은닉한 의혹이 있다'면서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고, 김 후보자는 "그러면 고발하시라"고 맞대응했다.
<i>장경태 의원 "딸과 사위를 통해서 소셜뉴스(위키트리 운영사) 재산을 부당하게 은닉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 거래 내역과 지분 구조 달라고 한 겁니다. 따님이 2012년 만 28세 때 7000주를 보유했다가 매각했다고 했습니다.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7000주를 또 샀어요. 이거 명확하게 밝혀줘야 합니다. 따님의 소셜뉴스 주식 거래 내역과 회사 지분 구조를 명확하게 밝혀주시라고요. 직계 존비속이잖아요."
김행 "저도 그것을 딸에게 설득하고 있는데, 딸이 원하지 않습니다."
장경태 "이거 분명히 고발되면 법적조치 당하실 겁니다." </i>
<i>김행 "네, (웃으며) 그러면 고발하세요."</i>
이후로도 두 사람은 '재산 은닉' 여부를 두고 설전을 이어갔다. 권 위원장은 발언 시간이 끝난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정리를 해주시죠"라며 제지했으나, 두 사람은 신경전을 끝내지 않았다.
<i>장경태 "딸이 어떻게 주식을 사서, 어떻게 보유했냐고요."
김행 "재산 공개 대상 아닙니다. 끝까지 물어보셔도, 재산 공개 대상 아닙니다. 지금 법으로 정해져 있는 재산 공개 대상이 아닙니다."
장경태 "그러니까 인사청문회 하고 있죠. 딸이 어떻게 재산 형성했는지 지금 증명이 안 되잖아요."
김행 "왜 그렇게 의심을 하십니까. 저희 딸이 지금 재산 공개 대상이 아니에요.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 않습니다."
장경태 "그럼 (딸이) 포스코 직장인인데 수십억을 벌었습니까?"
김행 "무슨 수십억을 벌었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세요."</i>
두 사람의 말다툼이 권 위원장의 제지로 끝이 나자, 김한규 민주당 의원이 김 후보자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청문회는 수사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지금 질의하는 건 형사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며 "후보자는 지금 문제가 있으면 고발하라고 하는데, 공직자로서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런 의원들의 질문에 툭하면 '고발하라'고 하는 태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후보자는 "제가 답변을 드려도 되면요"라며 말문을 열었으나 권 위원장이 "답을 요청할 때 답을 하라"고 해서 답을 이어가지 못했다. 권 위원장은 이어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한 대로 김 후보자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i>권인숙 "인사청문회의 의미를 망각하는 것 같아요. 자료 요청과 (위원들이) 밝히고 싶은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시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고발하라고 반발하는 건 정말 적절치 않습니다."
김행 "제가요. 공직자, 공직 법에 의해서 저희 딸은 지금 신고 대상이 아니에요."
권인숙 "그러니까 딸 얘기로 국한된 게 아니에요."
김행 "그리고요. 아까, 제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지 20일 만에 제가 주가 조작의 주범처럼 묘사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알지도 못하는 회사를 엮어놓으시니까, 제가 어떻게 입증합니까"
권인숙 "하셔야죠. 후보자님이 하셔야죠. 자료 제공하셔서 입증을 하셔야죠. 입증을 하시면 깨끗해지는 일입니다."
김행 "아니, 저희 딸이 공직자입니까? 제가 은닉 안 했습니다. "
권인숙 "후보자님, 지금 상황은 후보자님이 자초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고발하라는 말을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i>
<i>김행 "저를 형사범으로 몰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여기 와서 지금 범죄자 취급을... 아니 딸은... 분명히 아시지 않습니까."</i>
김 후보자의 이러한 답변이 이어지자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그러니까 자료를 공개하라'는 취지로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고, 권 위원장은 이를 제지한 뒤 말을 이었다.
<i>권인숙 "이런 식의 태도를 유지하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사퇴를 하시든가요. 본인이 범법이라는 지적에 증명을 못 하시면서 고발하라든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시면, 자료 제공 못한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세를 그렇게 가지시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i>
상황을 지켜보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때부터 위원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며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권 위원장은 "지금 하시는 자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맞섰고, 약 5분간 양측의 고성이 계속되자 권 위원장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10분 정회하겠습니다"라며 정회를 선언했다.
정회 후 회의장을 떠난 김 후보자와 여당 의원들은 속개 예정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서 청문회는 그대로 산회했다.
與 "권인숙 방지법 발의" vs 野 "김행랑 방지법 발의"
결과적으로 김 후보자는 청문회 도중 퇴장했고, 여야는 이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하며 대응에 나섰다. 여당은 일명 '권인숙 방지법'을 야당은 '김행랑 방지법'을 발의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권 위원장이 청문회 파행 방지를 조장했다고 보고 '상습 파행 방지법'을 이번 주 내로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위원장이 단독으로 청문회 일정을 의결하고, 편파적으로 청문회를 진행한 데 이어 일방적으로 차수 변경을 한 것이 파행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편파적 상임위 진행, 파행 운영을 막기 위해 권인숙 방지법을 발의하겠다"며 "공직 후보자, 증인, 참고인, 등이 있을 때는 의사일정 협의 전 미리 공직후보자나 증인 등의 의견을 들어 의사일정을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을 명문으로 규정해 권인숙 방지법을 조속한 시일내에 발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반대로 소위 '김행랑 방지법'을 예고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를 방어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자, (민주당 소속인) 권 위원장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청문회장을 박찼다"고 했다.
여성가족위 간사인 신현영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청문회 도중 후보자가 사라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는 후보자가 이유 없이 인사청문회에 불참하거나, 중도 퇴장하면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