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통제를 무기한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사업을 옥죄어 온 족쇄가 다소 느슨해진 만큼 두 회사는 반기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장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두 회사가 중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9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번 미국 정부의 결정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는 수출통제당국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경제안보대화 채널을 통해 11일 만료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를 무기한 연장할 계획을 밝혔다. 무기한 유예 조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무부의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명단에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VEU는 사전에 상무부로부터 승인받은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 수출·반입을 허용하는 일종의 허가 제도다. 두 회사가 VEU 명단에 오르면 건건이 장비 반입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 반도체 등의 생산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막는 규제를 도입했다. 다만 한국 대만 반도체 기업에는 이 규제 적용을 1년간 유예했다.
최 수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에도 미 정부의 관련 결정이 통보됐다”며 “통보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규제가 완화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중국 사업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엄두를 못 냈던 중국 반도체 설비의 장기적 투자와 운용계획 수립을 재개할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각국 정부 간 긴밀한 협의로 중국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유예 연장 결정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각국 법규를 성실히 준수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사업을 둘러싼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이 격화하면 미 정부가 ‘규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 정부의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도 중국 사업의 불안 요소로 꼽힌다. 지난달 21일 확정된 가드레일 최종안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중국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웨이퍼 투입 기준)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공장의 생산 비중을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익환/오형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