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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하마스, 사우디-이스라엘 화해에 '테러'...자신도 위험에 빠져
이스라엘 뿐 아니라 美공화당 강경파, 독일, 영국 분노
바이든 대통령, 사태 확대 방지 안간힘
이스라엘은 하마스로부터 공격 당한 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무장세력 근거지로 지목된 곳을 떠나 대피하라고 통보한 뒤 이틀 넘게 밤낮 없이 공군기와 포병을 동원해 폭탄을 퍼붓고 있다. 이스라엘은 30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해 가자지구 점령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자국민이 희생당한 미국도 지중해 항공모함 전단을 이스라엘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독일 등 유럽 각국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끊는 등 하마스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했다.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 역시 보복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점령에서 멈추지 않고 이란 공습에 나설 경우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는 3차 오일쇼크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동맹국들은 물론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동안 공들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협상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원유 생산 늘리던 이란, 좋은시절 끝나나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주변에서 벌어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이후 '3차 오일쇼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배럴당 82달러대에서 거래됐던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가격이 하마스의 공격 이후 86달러대로 급등했다.
유가가 오르는 것은 중동 전체로 분쟁이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800여명을 살해한 하마스의 테러 배후 세력으로 이란이 지목되면서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애 발각되지 않고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려면 외부의 지원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의 제재가 느슨해진 덕에 올들어 늘어났던 이란의 석유 수출 물량이 다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초 이란은 하루에 약 25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으나. 8월까지 생산량을 하루 310만 배럴로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마스의 공격에 이란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몇 달 동안보다 이란 석유 공급에 대해 훨씬 더 강경 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발가벗긴 희생자 영상 유포한 하마드 이란이 전쟁에 휘말릴 위험도 커졌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공격한 행위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스라엘과 미국·유럽연합(EU) 등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마스 대원이 콘서트에 온 독일인 여성을 살해한 뒤 반 나체 상태로 트럭에 싣고 다니는 영상과, 이스라엘 민가에 침입해 일가족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장면 등이 중개됐다. 국제적인 비난으로 하마스 자신의 존립은 물론, 본인들을 지원한 이란까지도 위험에 빠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는 8일(현지 시각)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확고히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이번 대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하마스가 비난을 감수하고 영상을 공개한 것은 이스라엘과 중동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사우디와의 평화 협상을 깨뜨리기 위해 불가피한 전략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할 경우 하마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란 역시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해 들이닥칠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를 지낸 마틴 인디크 부르킹스연구소 부소장은 "하마스와 이란의 주된 동기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가 자신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이 협상을 방해하려는 욕망이었을 것"이라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 전망을 파괴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무차별 보복하마스와 이란의 작전은 분쟁을 불러일으키는 목적은 달성했으나, 결국 의도하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숨으면 시가전에서의 민간인 피해와 지상병력 피해를 우려한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쉽게 나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인질을 앞세워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기대했겠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즉각 전쟁을 선포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근거지로 지목된 건물은 병원, 사원, 주택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완파하는 등 민간인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군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와 중동 등의 민간인 거주 지역서 테러리스트를 맞아 고전한 반면, 가자지구를 코앞에 둔 이스라엘은 전차와 자주포 등 기갑장비와 대량의 중화기를 동원해 건물을 부숴버리며 전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9일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야만인들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이란 폭격 우려..."美항공모함, 누구를 노리나"이스라엘이 단기간에 가자지구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화살은 이란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오랜기간 노력해왔고, 이란을 공습하기 위한 훈련도 계속해왔다. 작년 100대 이상의 항공기와 잠수함 등을 동원해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불의 전차' 훈련을 한 데 이어 올해초 미군과 함께 지중해에서 대규모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보잉사에서 공중급유기(KC-46A) 4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F35전투기를 개조해 1t짜리 폭탄을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이란을 겨냥해 모든 전쟁 준비를 해왔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실현 여부는 미국의 정책에 좌우될 전망이다. 중동에선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협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알자지라 방송은 9일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하며 '전략적 억지력'을 이유로 들었지만 하마스를 상대로 미국의 무적함대(armadas)는 필요하지 않다"며 "네타냐후와 광신도 장관들이 매우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네타냐후는 전쟁의 범위를 이란까지 확대하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 이란의 개입에 대한 확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란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경우 미국이 그동안 추진해온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외교관계 수립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경제에도 재앙이 예상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직 이란이 특정 공격을 지시했거나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내 분위기도 변수다. 야당인 공화당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이란과 수감자 교환 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에 동결돼 있던 60억 달러(약 8조 원)의 원유 수출 대금을 풀어준 게 하마스에 도움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