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무속인들 온다"…수험생·기업인도 몰리는 '부자 명당'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입력 2023-10-10 06:00
수정 2023-10-10 07:18


"음력 1월 1일을 전후해서 전국의 무속인들이 몰립니다. 기업인들과 수험생도 이른바 '기도발'이 좋아서 찾는 명당이죠."

지난 5일 경남 의령군 솥바위를 찾았다. 경남 사천공항에서 남강 줄기를 30분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바위다. 남강 강물에 4m 높이로 솟아 있는 바위로 모양이 가마솥을 닮았다. 물에 잠겨 있는 바위 바닥은 솥의 발처럼 발이 세 개가 달려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이 마을엔 "이 바위의 세 개의 발이 가리키는 방향 20리(약 8㎞)에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입으로 전해졌다.

최해자 의령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솥바위를 기점으로 8㎞ 이내에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 등 3명의 한국 재벌 총수가 실제로 태어나면서 동네의 전설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솥바위는 그래서 '부자바위'로 통하기도 한다.

솥바위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무속인, 기업인, 수험생 등이 몰린다. 최 해설사는 "재벌 총수의 전설에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여기서 왜군을 막은 정암진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며 "소문이 나면서 전국 사찰에서 찾아와 방생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솥바위는 이른바 ‘부자 바위’로 통한다. '부자 기운'을 받아 가겠다는 인파가 몰렸다. 'K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도 통하는 만큼 지역 기업인들의 방문도 잦다.

지난 5일에도 솥바위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의령군은 이달 6~9일에 열리는 '의령리치리치페스티벌(부자축제)'를 앞두고 이날 솥바위 주변에 부표를 설치했다. 관광객이 직접 솥바위를 만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솥바위에는 돈을 얹어 놓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솥바위에서 차로 15분 거리엔 호암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호암생가는 1851년 이병철 회장의 조부가 1907㎡ 부지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다. 호암 생가 오른쪽으로 이병철 회장이 거주한 본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회장은 1934년 일본 와세다대 정경과에서 유학하다가 건강이 나빠지자 본가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사업을 구상했고, 부친에게서 받은 의령 쌀 300석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쳤다. 1936년 마산으로 와서 협동 정미소를 운영했고, 1938년 대구로 이주해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세우게 된다.

이후 비료·섬유·전자 사업을 하나씩 일궈나갔다. 1978년엔 반도체산업에 진출하면서 한국 첨단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병철 회장은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기업인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그의 생애를 짓눌렀다. 6·25 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1953년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제일제당을 세우며 설탕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병철 회장은 ‘사업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신념을 바탕으로 혹독한 경영환경을 극복했다. 인재 제일, 합리 추구 등의 경영철학을 앞세운 그는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