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올 상반기 민사·행정·가사 소송에서 10건 중 7건꼴로 ‘심리불속행 기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불속행이란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이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제기된 소송(상고)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추가로 재판을 열어 따지지 않고 기각하는 제도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민사 본안사건 6257건 중 4442건(71%)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했다. 같은 기간 가사 본안사건은 295건(86%), 행정 본안사건은 1473건(75.2%)이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이유 없는 소 제기를 반복하는 소권남용인의 소송은 빼고 계산한 결과다. 민사 본안사건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지난해 69.3%, 2021년 72.7%로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1994년 효율적인 대법원 재판을 위해 도입된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심절차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이 상고를 판결로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는 제도다. 원심 판결이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하거나 중대한 법령을 위반한 경우 등이 아니면 심리불속행 기각이 가능하다. 형사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관과 재판연구관들이 기록을 검토한 후 별도 판결 이유를 적지 않고 판결을 내린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대법원이 빠르게 상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판결문에 구체적인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소송 당사자들조차 패소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장 의원은 “대법원이 처리한 민사·가사·행정 사건 10건 중 7건 이상이 심리불속행 기각됐다”며 “판결 이유도 알 수 없는 심리불속행 기각의 증가로 국민의 재판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