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하냐?" 반대에도…퇴직금 올인한 40대 워킹맘 [방준식의 N잡 시대]

입력 2023-11-26 07:00
수정 2023-11-26 07:28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저는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어느 순간 '회사에 쏟는 에너지를 온전히 내 사업에 쏟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길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가족들은 아이도 어린데 '왜 사서 고생하냐?'며 반대했죠. 퇴직금 전액을 학비로 내고 대출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회사를 만들었지만, 인맥이 없어 알릴 길이 없더군요. 문턱이 높은 공공기관에도 수없이 메일을 보냈어요. 온라인에도 창업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올렸죠. 그렇게 발로 뛰었더니 정부 스타트업 심사위원도 하고, 미디어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은 1년에 1500개 팀을 만나면서 창업자를 발굴하는 일을 하고 있죠. (웃음)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 대신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쿠팡과 토스가 되기를 꿈꾸지만 매달 내야 하는 고정비와 세금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투자 받기도 쉽지 않아졌다. 한 창업 전문가는 말한다.

"월급을 받는 사람과, 월급을 주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쉽게 도전했다가는 100% 망합니다."

한파가 불어닥친 스타트업 시장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창업 전문가가 있다. 공공기관 창업 멘토링부터 대학 강연, TV 창업 서바이벌 심사까지 종횡무진을 하고 있다. 임은정 LEJ벤처스 대표(47)의 이야기다.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을 하는 임은정 LEJ벤처스 대표(47·한국여성스타트업협회 회장) 입니다. 저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창업자들을 발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정부 창업 지원 사업을 평가하거나 멘토링 심사, 심의위원도 하고 있죠. 1년에 보통 1000~1500개 창업팀을 만나고 있습니다. 대학교 강연도 하고 TV 채널에서 서바이벌 심사도 하는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도 경력단절 시절을 겪으셨다고요.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죠. 일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마케팅 노하우를 살려 더 늦기 전에 창업 전문가로 도전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퇴직금을 전부 저의 공부에 투자했죠. 학비가 모자라 대출도 받았었습니다. (웃음)"

Q. 창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요.
"자본금으로 1000만원을 들고 창업했어요. 하지만 홍보나 마케팅이 쉽지가 않았죠. 공공기관 창업 관련 사업은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네트워크 없이 발로 뛰면서 하나씩 뚫었어요. 공공기관 리스트를 정리해 메일을 수없이 보냈죠. 대학원 시절에는 동기들과 함께 책도 내면서 저만의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했죠. '내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오게' 했어요. 온라인에 창업 콘텐츠, 칼럼, 소비 트렌드 등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다 덕성여대에서 강의가 들어왔고, TV에서도 연락이 왔죠. 누구 '백'으로 출연했냐는 말도 들었어요. 나라는 사람을 상품으로 비유하자면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죠. 간절함이 결국 통했던 것 같아요."

Q. 대표님만의 투자유치 연계 노하우가 있나요.
"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나다 보면 저와 결이 맞는 팀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죠. 창업자의 DNA가 보인다고 할까요. 창업은 아이템뿐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함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업의 대안으로 창업을 선택한 사람은 제외해요. 비즈니스도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태도가 안 좋은 사람은 거릅니다. 창업은 절대 녹록하지 않거든요."

Q. 최근 몇 년 사이 창업에 도전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준비가 안 된 분들이 정말 많아요. 초기 창업에는 자본조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입니다. 어떻게 버티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자본금 3000만원으로 6개월을 버틸 수 있다고 치면, 그다음부터는 매출을 일으켜 사업을 유지하겠다고들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되묻고 싶어요. 서비스 이용자도 없고, 제품이 팔리지 않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팀을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을지를요. 이런 현실적인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요. 초기 엔젤 투자도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다소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지금은 미래 가치만 보고 투자금이 들어가기보다는 성장지표, 숫자와 수치를 보고있죠."



Q. 창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처럼 사이드 프로젝트로 창업을 도전하는 분들이 많아요. 취미로 즐기면서 시작한 사람도 창업이 본업이 돼버리면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월급 받는 것과 월급을 주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달라요. 한 달에 내야 하는 고정비나 각종 세금 등과 같은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죠."

Q. 창업 실패하는 이들은 어떤 이유라고 보시나요.
"창업자는 가설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문제 인식을 하고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상의 날개'만 있는 것이 아쉬워요. 우선 자신의 서비스와 제품을 팔아야 하는 타깃 군에 대해 어떤 검증이나 데이터 확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막연히 본인이 느낀 불편함이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낀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 '창업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사업자 등록부터 시작하죠. (웃음) 아이디어에 대한 끊임없는 검증이 가장 중요해요. 시장이 성장하는지 감소하는지 분석하고, 고객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하죠.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도 피드백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Q. 최근 주목하는 유망 분야가 있나요.
"뭘 해도 되겠다 싶은 팀은 1년에 2~3개 정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푸드테크 업체에 관심이 커요. 농식품을 올드 산업으로 인식하지만, 테크가 접목하면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요. 최근에는 예술 분야도 주목하고 있어요. 챗 GPT가 수만 장의 그림과 음악을 분석해 창작하잖아요. 저는 그것을 보고 오히려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은 더 존중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예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싶어요."

Q. 만약 지금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창업을 하시겠나요.
"저라면 커머스 분야에 도전할 것 같아요. 플랫폼 비즈니스는 '돈 먹는 하마'입니다. 자본금이 계속 들어가는 일이죠. 커머스로 시작해 저만의 진짜 팬을 모은 커뮤니티화를 해야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 시기에 중국 '왕훙'(인플루언서)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실제로 라이브 커머스 분야가 굉장히 활발해졌죠. 네이버 유튜브 등 플랫폼들이 앞다퉈 투자하고 있는 분야죠."

Q. 라이브커머스를 하시려는 이유가 있나요.
"스타트업들이 만든 상품들이 품질력이 우수하더라도 파는게 쉽지가 않아요. 최근 못난이 쌀을 이용해 다이어트 식품을 만든 팀이 있었어요. 브랜딩이 전혀 안 되어 있었죠. 그들에게 타깃 군에 맞는 채널을 공략해서 마케팅을 꾸준히 하라고 조언을 했어요. 식품이나 의류, 화장품류는 홍보나 마케팅을 할때 라이브 커머스가 폭발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매력이 있는 1명의 팬이 일당백을 하기도 하죠. 그런 팬들을 늘리다 보면 결국은 기업가치가 높아집니다."



Q. 4050 여성들에게 창업의 문턱이 높습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40대가 넘어가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내 사업에 시간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생기죠. 중장년층들은 본인들은 경험치가 많다고 자신을 하지만, 그것을 맹신하다간 큰코다칩니다. 직함 타이틀을 떼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요. 자신과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내년부터는 회사를 멤버십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10개 정도 스타트업이 팁스에 선정되기도 하고 투자유치를 받는 등 좋은 성과가 있습니다. 시리즈A 받은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투자유치 연계뿐 아니라 다양한 창업 콘텐츠도 제작할 계획이예요. 네트워킹 행사도 지속해서 할 계획입니다. 창업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여러 직업을 가지는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N잡 뿐만 아니라 NEW잡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준식의 N잡 시대>는 매주 주말· 연재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