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을 한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아름다운 것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지만,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고통받아야 하는 장르’가 있다면, 아마 발레일 것이다. 무대 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모습은 한없이 가볍고 우아하다. 하지만 이들이 찰나의 완벽을 위해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 한 편의 발레 공연을 위해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약 3개월에 걸쳐 땀흘린다. ‘발레를 하루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선생이 알고, 사흘 안 하면 관객이 안다’는 이 잔인한 진리 때문에 무용수들은 단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 발톱이 사라지고, 뼈마디가 튀어나오고,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려도-그들은 매일 몸의 한계와 싸운다.
말없이 말하는 발레는 600여 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에서 낭만의 꽃을 피운 뒤 러시아에서 훨훨 날개를 달았다. ‘무언의 예술’이 예술가들의 영혼을 더욱 자유롭게 한 걸까. 꿈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과 신비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일정한 질서에 따라 절도 있는 형식미를 뽐내기도,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주는 자유의 춤이 되기도 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아람 하차투랸 등의 수많은 작곡가는 오직 ‘천상의 춤’ 발레를 위한 음악을 썼다. 발레는 그렇게 언어 없이 눈과 귀로 오감을 진동시키는 세계인의 ‘클래식’이 됐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를 듯한 점프, 제자리에서 중심을 잡은 채 수십 회전을 하는 모습, 온몸의 무게를 오로지 발끝에 실어 움직이는 경이까지…. 발레 무대에선 우리가 상상해온 감각의 한계가 온전히 무너진다.
발레가 지루하고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단 한 번만 무대를 찾아보시라. 작은 몸짓만으로도 심장까지 전해지는 사랑과 기쁨과 분노, 그 감정들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나도 모르게 온 마음을 빼앗겨버릴 테니. 꽤 오래 꿈결 속 같은 무용수들의 몸짓이 눈앞에 아른거릴 테니.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