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교집합을 도출해내는 ‘융합 바이오’는 합성생물학을 넘어 바이오 전체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는 추세다. 그중 장(腸) 활동이 ‘몸’의 질병을 넘어 ‘정신’ 질환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가설을 제기한 허준렬 미국 하버드 메디컬스쿨 교수의 연구는 차세대 바이오 연구의 중심축이 뇌 분야로 향하고 있다고 가리켰다.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뇌 기능과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 간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며 “바이오의 미래는 결국 뇌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연구를 총칭해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 이론이라고 부른다. 장-뇌 연결축 이론 중엔 장의 미생물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 혈액을 타고 순환하며 면역과 물질대사를 넘어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있다. 일각에선 장이 ‘제2의 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현대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기원전 3세기에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것이 최근 재조명되는 이유다.
수많은 뇌질환 중 허 교수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건 자폐와 파킨슨병, 치매다. 이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변비, 설사와 같은 고질적 장 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 뇌와 장이 연결돼 있다는 가설을 제공했다. 허 교수는 “뇌 질환과 장내 미생물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가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통해 연결돼 있다는 점”이라며 “여러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과 세포들이 장과 뇌의 소통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세균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항생제를 사용하면 뇌질환이 일시적으로나마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허 교수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인간의 면역 시스템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요즘 파킨슨과 치매, 자폐를 면역 질환으로 보는 시각이 월등히 많아졌다”며 “뇌와 관련한 질환을 면역 시스템으로 치료하는 뉴로이뮨테라피가 대세가 될 것이고, 미국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스턴=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