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에서 주재훈(31·오른쪽)은 ‘별종’이다. 그는 전문 양궁 선수가 아니다. 양궁동호회에서 취미 삼아 갈고닦은 실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양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종목이다. 엘리트 과정을 밟고도 탈락의 눈물을 삼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곳에서 본업을 따로 두고 활을 잡은 지 8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정보보안부 청원경찰 주재훈이 국제무대에서까지 일을 냈다. 주재훈은 4일 중국 항저우 푸양인후스포츠센터 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컴파운드 양궁 혼성전에서 소채원(26·왼쪽)과 은메달을 합작했다. 결승에서 인도의 오야스 프라빈 데오탈레-조티 수레카 벤남과 1점 차 접전(158-159)을 펼친 끝에 따낸 은메달이다. 양궁 세부 종목인 리커브와 달리 컴파운드는 올림픽에선 열리지 않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이 ‘큰 무대’로 여겨진다.
“동호인으로 시작해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던 주재훈은 목표로 한 메달을 목에 걸면서 ‘동호인 신화’를 완성했다.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해 무급휴직 중인 주재훈은 진급과 은메달 중 하나를 고르라면 뭘 선택하겠냐는 취재진의 말에 “정말 고르기 어렵다”며 “(그래도) 은메달”이라고 답했다. ‘1년 연봉과 맞바꾼 메달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결코 후회는 없다. 물론 와이프 생각은 다를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남들보다 10여 년 늦게 양궁을 시작한 주재훈은 군 전역 후인 2016년 대학 근처에 있던 양궁동호회를 통해 처음 활을 잡았다. 입문과 동시에 나가는 동호인대회마다 우승 트로피를 휩쓸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청원경찰로 취업한 뒤에도 활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개인 시간에는 지인 축사를 빌려 연습했고, 따로 스승이 없다 보니 호흡이나 루틴 등은 유튜브를 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태극마크 도전과 탈락을 반복하던 주재훈은 지난해 생업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한번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불운을 마주하기도 했으나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되면서 기회가 한 차례 더 주어졌고, ‘4전5기’ 끝에 올해 선발전에서 남자부 4위를 차지해 대표팀에 승선했다.
주재훈의 활약으로 한국 양궁은 혼성전이 처음 도입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대회에 이어 이 종목에서 2회 연속 은메달을 수확했다. 주재훈은 남자 단체전에서 ‘금빛 과녁’을 다시 한번 조준한다. 그는 남자 개인전에서도 동메달 결정전에 올라가 있다.
이날 1엔드 첫발 실수로 인도에 1점 차로 끌려가던 주재훈-소채원은 3엔드에서 4발을 모두 10점에 꽂아 119-119 동점을 만들었다. 4엔드에서 인도가 모두 10점 과녁을 뚫은 반면 한국은 소채원이 한 발을 9점에 쏘면서 1점 차로 금메달을 내줬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