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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현실을 드디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일(현지시간) 뉴욕 월가는 최근 쏟아진 미국 중앙은행(Fed) 위원들과 투자 대가들의 고금리 전망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급등하는 미 국채 금리도 그간 금리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 자신했던 월가를 더욱 실망하게 했다. 채권 가격 급락은 제2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공포마저 키우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 Fed가 오랜 기간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면서 이날 뉴욕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고금리 지지 선언 잇따라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연이어 고금리 지지 발언을 내놨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다음 달 FOMC 회의 때 미국 경제가 최근 (9월) FOMC 회의 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Fed 내 대표적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이날 한 행사에서 “나는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지만 인하 역시 마찬가지”라며 “동결을 원하며 오랫동안 (금리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Fed 인사들이 한꺼번에 이같은 발언을 쏟아낸 것은 같은 날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의 영향이 적지 않다.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8월 민간기업 구인 건수는 961만건으로 전월 대비 69만건(7.7%)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 880만건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고용지표는 Fed가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주목하는 지표다. 구인 건수가 예상치를 큰 폭으로 웃도는 만큼 Fed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미 국채금리 연 5% 돌파할 수도미 국채금리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이날 연 4.8%를 돌파한 뒤 4일(현지시간) 오전 2시 연 4.848%까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른 나라 국채 금리도 급등세다.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같은 시각 연 2.9720%로 2011년 유로존 재정 위기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이날 그리니치 경제 포럼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급등하고 있는 10년물 국채금리가 5% 임계 값까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국채금리가 올라가면서 월가에선 이에 따른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분기 은행 대차대조표에서 국채 가격 하락에 따른 미실현 손실은 총 5584억 달러로, 전 분기 대비 8.3% 증가했다. SVB가 채권 가격 하락 시점에 예금 마련을 위해 손해를 보고도 국채를 팔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일어난 것처럼 다른 중소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는 중이다. 자신감 잃은 월가미 국채금리 급등은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이 더 높은 금리로 리파이낸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뿐 아니라 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30년 고정 모기지의 평균 금리는 연 7.72%까지 올랐다. 2000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모기지 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다.
고금리 전망에 따라 경제 전반에 침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지수는 전장보다 430.97포인트(1.29%) 하락한 3만3002.38로 거래를 마쳤다. S&P 500지수는 전장보다 58.94포인트(1.37%) 떨어진 4229.45로,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48.31포인트(1.87%) 밀린 1만3059.47로 장을 마감했다.
월가에선 투자자들이 이제서야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지난해는 시장이 금리 상승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고금리 장기화에 적응하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