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갔던' 기재부 간부, 억대 연봉 받고 삼성 이직 '술렁' [관가 포커스]

입력 2023-10-04 10:41
수정 2023-10-04 10:57
“승진하려면 바늘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다 본부엔 웬만한 자리도 없습니다.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면 지금보다 몇 배 많은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기획재정부 관계자)

추석 연휴가 끝나고 업무가 재개된 4일 기재부는 한 고위 간부의 이직 소식에 술렁였다. 기재부 출신으로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던 L부이사관은 지난달 말 의원면직 처리됐다.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이다.

L부이사관은 조만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를 거쳐 삼성전자로 이직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에선 상무 대우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출신 간부가 삼성전자로 이직하는 건 2016년 김이태 부이사관(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담당 부사장) 이후 7년 만이다. 기재부 국제금융과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국제금융통이었던 김 부사장은 2016년 삼성전자 IR그룹 상무로 이직했다.

행정고시 42회인 L부이사관은 기재부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에서 경제정책 및 정책 조율 업무를 맡았던 ‘정책통’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문재인·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 내리 근무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기재부 간부들은 L부이사관 이직 소식을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고 했다. 한 국장급 간부는 “L부이사관은 경제정책국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데다 문재인·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 모두 근무한 베테랑 간부”라며 “이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L부이사관이 삼성전자에서 맡을 업무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L부이사관의 이직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미래전략실 부활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 삼성측의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L부이사관이 이직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취업 승인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부서에서 근무할 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L부이사관 부인도 동기인 행시 42회 공무원 출신으로 지금은 민간 기업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LG유플러스 상무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네이버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부부 공무원 출신이 모두 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케이스다.

삼성측은 L부이사관 뿐 아니라 기재부 고참간부인 A과장에게도 적극적인 영입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과장은 아직까지 이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공직사회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행시 출신의 엘리트 국·과장급 간부들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재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핵심 부처의 고위 간부들이 민간 기업 임원으로 잇따라 이직하고 있다.

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낮은 보수’다. 명문대를 졸업한 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관가에 입성한 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박탈감은 상당하다. 더욱이 통상 40대 후반 과장급 간부들의 상당수가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할 시기다.

민간 대기업과 달리 공직사회는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은 임직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기도 한다. 한 과장급 간부는 “자녀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대학 등록금을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더욱이 장·차관으로 가는 길목인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하는 것도 바늘구멍을 뚫기보다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억대 연봉을 앞세운 민간 기업들의 영입 제안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이 행시 출신 공무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한 과장급 간부는 “20~30대뿐 아니라 40대 후반 과장들 사이에서도 장·차관으로 승진하겠다는 꿈은 버린 지 오래”라며 “앞으로도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박상용/김익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