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약 5만 명의 소도시인 미국 아이다호주의 아이다호폴스. 이곳에서 황량한 벌판을 따라 서쪽으로 한 시간가량 차를 달리면 미국의 유일한 원자력발전 전문 국립연구소인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8월 말 찾은 INL은 국가 안보가 달린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시설답게 경비가 삼엄했다.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보안 요원이 취재진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졌다. 카메라, 노트북 등 전자 장비는 모두 사전에 반입 허가를 받아야 했다.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0분 넘게 신원 확인 절차를 밟고 출입 허가를 받았다. 한국 언론 최초로 INL 내부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INL은 미래 에너지 전쟁의 판도를 바꿀 비밀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바로 ‘마블(MARVEL) 프로젝트’다. 소형모듈원전(SMR·20~300㎿)보다 작은 마이크로(초소형) 원자로에서 100㎾의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실험용 원자로의 크기는 준중형 세단보다 작아 보였다. 높이 4.4m에 무게는 2t에 불과하다. 컨테이너 트럭으로 손쉽게 옮겨 에너지가 필요한 곳에 바로 설치할 수 있다. 마이크로 원전은 원전의 패러다임을 건설에서 제조로 바꿈으로써 중국, 러시아에 뒤진 에너지 패권을 단숨에 뒤집기 위한 미국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초소형 원전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력 수요를 해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기존 대형 원전, SMR과 달리 독립 전력망으로 작동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력 문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땅값이 비싼 도심에 자리 잡은 데이터 센터도 초소형 원전이 상용화하면 격오지로 이전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 등은 ‘마블 프로젝트’ 기술을 기반으로 8㎿급 마이크로 원자로 개발에 들어갈 계획이다. SMR의 10분의 1 크기인 이 초소형 원전은 5000명이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INL은 지난달부터 원자로 부품을 단조하기 시작했다. 최종 개발 목표는 내년 말이다. 연구 단지에서 차로 5분가량 떨어져 있는 과도반응기실험시설에서 모든 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야스르 아라파트 INL 마블 프로젝트 책임자는 “마블은 청정에너지가 필요한 곳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퓨처 테크 특별취재팀
▷박동휘 유통산업부 차장(팀장), 박신영 뉴욕 특파원, 최진석 실리콘밸리 특파원, 신정은·김인엽 국제부 기자, 강경주 중소기업부 기자, 빈난새 산업부 기자, 이주현 IT과학부 기자
아이다호폴스=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