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내 때려 죽인 남편…재판부 실형 선고 안 한 까닭

입력 2023-10-03 10:20
수정 2023-10-03 10:21

치매를 앓던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한 남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제11형사부(조영기 부장판사)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남편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021년 4월 12일 오후 9시께 A씨는 치매를 앓던 70대인 아내 B씨를 폭행했다. B씨에게 치매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B씨가 약을 먹기 싫다며 화를 내고 밥주걱으로 A씨의 손목을 내리치자 이에 격분하면서다. 이후 B씨는 홀로 집 밖으로 나간 후 실종됐다. B씨는 실종 신고된지 6일이 지난 같은달 18일 집에서 약 1.6km 떨어진 하천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

B씨의 부검 결과 사인은 두부손상(급성 경막하출혈 및 뇌지주막하 출혈)이었다. 경찰은 실종신고 당시 "아내를 때렸다"는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A씨를 검거했다.

A씨의 변호인은 B씨가 하천 위 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부검 때 몸에서 검출된 플랑크톤과 물이끼 등 상태 등으로 미뤄 폭행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집을 나서며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속 B씨의 얼굴에 멍 자국이 있고, 갈비뼈를 부여잡고 비틀거린 점 등을 고려해 A씨의 폭행이 사망의 원인이라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우발적으로 범행했으며 오랫동안 B씨를 돌봐온 점 등을 감안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조 부장판사는 "치매를 앓는 피해자에게 약을 먹이려다 피해자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충동적으로 폭행했는데 고되고 긴 간병 기간 중 우발적으로 범행이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요양 보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등 오랜 기간 피해자 곁에서 병간호하고 돌본 점, 유족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피고인이 고령이고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