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연방정부의 업무중단(셧다운)을 막는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일시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근본적인 합의엔 이르지 못해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상·하원은 오는 11월 17일까지 45일간 연방정부가 쓸 수 있는 임시 예산안을 지난달 30일 처리했다. 임시 예산안은 하원에서 민주당 의원 99%의 지지를 얻어 찬성 335표, 반대 91표로 가결됐다. 이어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도 찬성 88표와 반대 9표로 통과됐다. 처리 시한 세 시간 전에 의회 문턱을 넘은 임시 예산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식 발효했다.
임시 예산안은 11월 17일까지 연방정부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대로 재난 지원 예산은 160억달러(약 22조원) 증액됐다. 민주당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공화당 반대로 제외됐다. 민주당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공화당은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이 남은 쟁점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11월 17일 이후 또다시 셧다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지원 두고 갈등미국 의회가 셧다운을 세 시간가량 앞두고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킨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핵심 쟁점인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놓고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미국 국경 강화 예산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가 커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시 예산안이 통과된 다음 날인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의회에 촉구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주도한 임시 예산안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240억달러)이 포함되지 않았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화당 내 반대 의견이 많아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뺀 것이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며 “반대편에 있는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약속을 지키길 바라며 그들은 별도 투표(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압도적으로 많은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침략에 맞서 스스로 방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매카시 의장이 지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또 “애초 이 상황까지 와선 안 됐다”며 셧다운 위기를 불러온 것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벼랑 끝 전술이 지겹고 (이런 것에) 지쳤다”며 “(정치적) 게임을 그만하고 이제 이 일을 처리해야 하며 다른 위기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맹국들은 자국 내 반대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면담한 뒤 “미국 의회의 임시 예산안 합의에 놀랐다”며 “우크라이나가 계속 미국 지원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수감사절 전 다시 셧다운 위기?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보다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미국 국경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매카시 의장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지지하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는 미국과 미국의 국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죽는 미국인보다 미국 국경에서 죽는 미국인이 더 많다”며 “국경을 우선시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지원과 국경 예산을 함께 처리할 뜻을 내비쳤다. 매카시 의장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국경 강화 예산을 연계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에 무기가 확실하게 지원되도록 하겠지만 만약 미국 국경이 안전하지 않다면 우크라이나는 큰 (지원) 패키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와 국경 예산을 둘러싼 이견이 당장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결국 추수감사절 연휴 직전에 또다시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큰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