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영화가 이렇게 콩가루고 막장이야?”, “김 감독 현장은 원래 막장에 콩가루야.”
김지운 감독의 새 영화 ‘거미집’에 등장하는 극 중 고참 배우 오 여사(박정숙 분)의 대사들이다. 전자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을 재촬영하는 장면에서 바뀐 내용에 어이없는 듯 내뱉은 말이다. 후자는 영화 촬영 현장이 이런저런 일들로 어수선해지고,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때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한다.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은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걸작의 열망에 사로잡힌 김 감독(송강호 분)이 영화제작사 신성필름 촬영장에서 다 찍은 영화의 내용을 고쳐 이틀 동안 재촬영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은 한국 영화의 ‘암흑기’로 꼽히는 1970년대 유신체제 기간(1972년 10월 17일~1979년 10월 26일)이다. 유신헌법 발효 1년이 지난 1973년 개정된 영화법으로 유례없이 혹독한 심의·검열이 이뤄졌다. 기존 사전 검열 외에 제작 전 시나리오 심의를 통과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제도도 새로 생겼다.
영화는 꿈에서 김 감독이 이미 촬영을 마친 ‘거미집’의 달라진 결말 부분을 계속 보면서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시 찍지 않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대로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 이걸 알고도 비난이 무서워 외면하면 죄악이 된다.”
데뷔작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김 감독은 이런 혼잣말을 되뇌며 시나리오를 꿈에서 본 대로 고쳐 쓴다. 제작사에 찾아간 김 감독은 이틀만 추가 촬영하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격렬한 반대와 난관에 부딪힌다. 제작사 백 회장(장영남 분)의 반응이 흥미롭다.
“걸작을 왜 만들어요? 그냥 하던 거 하세요. 심의 안 나면 절대로 안 돼요.” 백 회장 말대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심의다. 문화공보부 담당자는 김 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가 “반체제적이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퇴짜를 놓는다.
어렵사리 주연 배우들을 모아 다시 시작한 재촬영 현장은 오 여사의 표현대로 ‘막장’이고 ‘콩가루’다. 문공부 검열 담당자들이 난데없이 들이닥치고, 일본으로 출장 간 줄 알았던 백 회장도 예고 없이 돌아와 ‘촬영 중단’을 선언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친다.
영화는 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지만, 극 중 백 회장의 말처럼 “치정극이자 멜로물이자 재난극이자 스릴러” 같은 극 중 흑백 영화 ‘거미집’같이 어수선하다. 시대를 풍자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소재를 빌려와 희화화한 코믹 드라마에 가깝다. 송강호가 연기한 김 감독이 고(故) 김기영 감독을 모티브로 하고 희화화했다는 논란도 있지만, 신연식의 원래 각본을 김지운 감독이 직접 각색하면서 그런 색깔은 거의 없어졌다. 당시 시대와 영화계 현실에 대한 고민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1970년대가 아니라 오늘날의 영화감독 같다.
송강호와 극 중 김 감독의 스승이자 멘토로 나오는 신 감독 역의 정우성 등 배우들이 합을 맞추는 앙상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종잡을 수 없는 신미도 역의 전여빈과 당돌하고 약삭빠른 한유림 역의 정수정 등 ‘스크린 신예’들과 박정숙, 임수정, 오정세 등 베테랑들의 신구 호흡도 잘 맞는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