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화장실에서 저지른 몰래카메라 범행이 '성 착취물 제작'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피해자들의 신체를 촬영해 제작한 영상물은 성 착취물이라고 봤지만, 2심은 성적 행위 없는 화장실 이용행위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음란한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김형진 부장판사)는 청소년성보호법상 성 착취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A(25)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신상정보 5년간 공개·고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8∼9월 상가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47회에 걸쳐 피해자들을 촬영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을 위해 여자 화장실에 침입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와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천장을 뚫은 혐의(재물손괴)에 더해 성 착취물 800개를 소지한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모두 유죄로 판단하며 "상당한 수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해 화장실을 그 용도에 따라 이용하는 과정에서 신체 부위를 노출한 것은 성교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성 착취물 제작 범행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과 별개로 화장실 이용행위 자체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화장실 몰카 영상을 성 착취물로 확장해서 법률을 해석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결국 성 착취물 제작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혐의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 촬영 범행 피해자 중 상당수는 아동·청소년이었으며, 거의 매일 건물에 출입해 촬영물을 확인한 피고인으로서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았을 것임에도 범행에 계속 나아갔다는 점에서 죄책이 더 무겁다"고 지적했다.
다만 성 착취물 제작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점과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정 등을 종합해 형량을 줄였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