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주공 아파트는 숱한 ‘최초’ 타이틀과 함께 한국인의 주거생활 발전을 이끌었다.
국내 아파트 시대를 개막한 것은 주택공사가 1962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지은 ‘마포아파트(현 마포삼성아파트)’다. 마포형무소 농장 터에 10개 동, 642가구 규모로 들어선 국내 첫 단지식 아파트다. 준공식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 직무대행은 ‘혁명 한국의 상징’이라고 했으며, 1971년 대통령 선거 포스터 배경으로 마포아파트를 활용하기도 했다.
주공이 1970년 이촌동에 준공한 한강맨션은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한강 조망권에 최대 55평형, 알루미늄 새시와 상수 온수 공급 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초 고급 아파트다. 아파트 본 공사를 하기 전에 견본주택을 지은 것 역시 한강맨션이 처음이다.
반포주공은 1970년대 영동 개발을 선도했다. 국내 최초 복층형에 테니스장과 수영장까지 갖춘 덕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아파트 청약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7년 반포주공 3단지가 처음이다. 당시 산아제한 정책에 맞춰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청약 우선권을 줬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실제 청약자 사이에 불임시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고 한다. 반포주공이 한때 ‘고자촌’ 또는 ‘내시촌’으로 불린 이유다.
올해로 45년째인 국내 첫 고층 아파트(15층) 잠실주공 5단지는 최고 70층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단지’ 둔촌주공은 여기서 자란 ‘주공 키즈’가 단지 40년 생애사를 정리한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이인규)라는 단행본까지 냈다.
LH는 과거 주공 아파트로 ‘건실’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리와 부실의 온상’이라는 오명이 먼저 연상된다. 2년 전 임직원의 내부정보 땅 투기 사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지하주차장 무량판 부실 공사에 이어 아파트 외벽 철근을 최대 70%까지 누락한 사실도 발견됐다. LH 신임 사장들은 저마다 “주공 아파트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하지만, ‘LH 순살 아파트’는 주공 아파트에 대한 좋은 추억마저 갉아먹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