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겐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땐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 (로마시대 정치가·철학자 키케로)
패션이든 음식이든 노래든 '복고 열풍'이 여전히 뜨겁다. 사회나 경제의 변화가 빨라질수록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려는 성향은 강해진다. 기존 세대는 그 시절 향수를, 젊은 층은 호기심과 새로움을 갖고 복고에 뛰어든다.
책도 예외는 아니다. 태블릿 대신 종이책을, 볼거리 대신 읽을거리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역사 깊은 베이징 디탄 공원 가판 서점이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일부는 트렁크까지 준비해 책을 가득 사갔다. 국내에선 교보·영풍문고와 함께 국내 3대 오프라인 대형서점으로 꼽히다 부도가 났던 반디앤루니스가 온라인 서점으로 부활하며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번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길다. 정부가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총 6일의 연휴가 생겼다. 국내 주식시장도 긴 휴가에 돌입하는 만큼 자본시장 최일선에서 활약해 온 리더들도 한 템포 쉬어가게 됐다.
28일 <한경닷컴>은 자본시장 기관장과 최고경영자(CEO) 9인에게 최근 서재에서 꺼내든 책이 무엇인지 묻고 그 이유를 들어봤다. 역사 소설부터 만화책, 실리콘밸리 경영서까지 다양한 책들이 추천됐다.
먼저 한국 증시를 책임지는 한국거래소의 손병두 이사장은 일본 교세라의 창업자인 고(故) 이나모리 가즈오(Inamori Kazuo) 회장이 쓴 <왜 리더인가>와 리베카 헨더슨(Rebecca Henderson) 하버드 교수가 쓴 <자본주의 대전환>을 추천했다. 그는 "가즈오 회장이 기업인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면 핸더슨 교수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에 시선을 뒀다"며 "이 두 권을 통해 독자들은 기업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주의 이익과 사회 공동의 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지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1월 취임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취임식도 갖지 않은 채 숨가쁜 첫 해를 보냈다. 서 회장은 독자들에게 김훈 소설가의 역사 소설 <하얼빈>을 권했다. 서 회장은 "안중근 의사에 집중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이 책에선 그의 거대한 계획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행한 우덕순에 주목한다"며 "그가 어떤 심정으로 안중근과의 동행을 택했을지 헤아려 가며 책을 읽는 재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순호 예탁결제원 사장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다독가다. 이 사장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가 쓴 <행운에 속지 마라>와 와튼스쿨 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 앤 테이크>를 추천했다.
이 사장은 '행운에 속지 마라'에 대해 "부자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투자법칙은 대부분 운으로 실현된 것이어서 곧이곧대로 믿다간 위험할 수 있다. 때문에 불운이 와도 여기에 대비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책은 투자 시 범하기 쉬운 '기대수익'과 '확률' 상의 오류를 쉽게 설명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해선 "자기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유관 기관장뿐 아니라 증권·운용가 리더들도 보물책들을 꺼냈다.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전성률 서강대 교수와 신현암 팩토리8 연구소장이 펴낸 <왜 파타고니아는 맥주를 팔까>를 소개했다. 박 사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MZ세대의 등장이란 새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인들을 위한 사례 위주의 지침서"라며 "매출이나 이익으로 평가받던 시대를 넘어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재도약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소파에 앉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존 리스트(John A. List) 시카고대 교수가 쓴 <스케일의 법칙>을 통해선 사업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는 미국 후사토닉 파트너스 창립자인 윌리엄 손다이크 최고경영자(CEO)가 쓴 <현금의 재발견>을 추천했다. "탁월한 경영자의 역할 중 하나인 '자원 재배분'의 중요성과 그 사례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다. 황 대표는 또 "비소비에 대한 시장 창조혁신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주제가 인상깊다"며 <번영의 역설>도 소개했다. 이 책을 쓴 고(故)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인 경영사상가로 이름을 떨쳤다.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는 물리학자 김상욱이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추천도서로 꼽았다. 강 대표는 "원자 사이의 연결을 통해 물질이 생성됐고 사람의 연결로 지금의 사회가 꾸려졌다"며 "변화무쌍한 금융산업에서도 새 동력을 확보하려면 모든 이해관계자와 연결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성장해야 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윌리엄 맥어스킬 옥스퍼드대 교수의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를 두고선 "미래 세대까지 누릴 수 있는 '길고 굵은 금융'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게 도와준 책"이라고 설명했다.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그래비티캐피털(Gravity Capital) 창립자인 애덤 시셀(Adam Seessel)이 쓴 <돈은 빅테크로 흐른다>를 권했다. 배 대표는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들은 테크주와 플랫폼주에 대해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저자는 급변하는 흐름 속 테크주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른바 '가치투자 3.0'이란 새 투자법을 개발했는데 그 주장을 풀어가는 시선이 흥미롭고 공감됐다"고 말했다.
이승건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브래드 스미스(Brad Smith)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등이 적은 <기술의 시대>를 추천했다. 이 대표는 "기술 혁신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늘 있어왔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해결하려면 새 기술에 맞는 새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며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환기할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덧붙여 미국 스타 만화가인 네이선 파일의 만화책 <낯선 행성>도 소개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을 지구에 적응 중인 외계인의 눈으로 표현한 네 컷 만화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승효 카카오페이증권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경영 스승으로 알려진 고 빌 캠벨에 대한 책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를 추천했다. 저자는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 전 구글 CEO다. 이 대표는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기 마련"이라며 "리더십 원칙과 조직 운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책"이라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