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서 한국을 비롯해 튀르키예와 대만, 태국, 싱가포르, 호주, 중국, 영국 등 11개국에선 기업결합심사가 완료됐다.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의 승인만 남아 있다.
그러나 독과점 제한 역사가 뚜렷하고 경쟁당국의 규제도 강한 EU와 미국의 승인을 얻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이들 당국은 한국과 미국·EU 도시를 오가는 노선별로 시장 획정(경쟁당국이 기업 인수합병의 경쟁제한성을 판단하기 위해 해당 시장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노선이 대부분 독과점 가능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업계 1, 2위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치면 인천~바르셀로나 노선은 두 회사의 점유율이 100%다. 로마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유럽 노선도 70% 이상이다. 미국행 노선 또한 인천발 뉴욕·시카고·로스앤젤레스(LA)행 점유율이 100%다. 역시 따로 시장이 획정되는 화물 운송은 경쟁 항공사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독과점 가능성을 지적받고 있다.
이 때문에 EU와 미국 경쟁당국에서는 ‘합병하려면 독과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의미한 경쟁사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EU에는 티웨이항공을, 미국에는 에어프레미아를 제시하는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를 경쟁사로 내세웠지만 EU·미국 경쟁당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EU 집행위원회는 올초 “합병 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감소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5월 폴리티코를 통해 “미국 법무부가 양사의 기업 결합을 제한하기 위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 3월 두 회사의 인수합병(M&A)을 승인한 영국 경쟁시장청(CMA) 또한 대한항공이 합병 후 아시아나의 슬롯을 모두 영국 항공사에 넘겨주겠다고 제안하자 겨우 ‘반쪽 승인’을 내줬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선 합병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슬롯 7개를 모두 버진애틀랜틱에 넘겨줘야 한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