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82년 만에 폐원 수순을 밟고 있는 서울 중구 인제대 서울백병원을 준중증 응급의료시설이나 해외 관광객이 찾는 의료 관광 특화 병원으로 전환해 서울 도심 지역의 의료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종로)과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중구성동구을)은 25일 국회에서 ‘서울백병원 폐원으로 인한 의료공백과 서울 도심살리기 대책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인제대 설립자인 고(故) 백인제 박사 일가가 참석했다. 서울백병원은 서울 중구 내에 있는 유일한 민간 종합병원으로 지난 6월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회에서 이사 전원 찬성으로 폐원 결정이 났다. 재정난이 이유였다.
장여구 서울백병원 교수는 “서울백병원 폐원으로 서울 도심의 공공의료 공백이 시작됐다”며 “도심 한복판이라는 위치의 장점을 살리면 ‘만성 적자는 폐원이 정답’이라는 논리를 뒤집을 수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장기려 박사의 친손자다. 그는 “서울백병원을 복부 위장관과 뇌 손상에 특화된 준중증 응급 의료시설로 전환해 지역 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시설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응급 의료시설 전환 등을 통해 서울시 재정을 투입받으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동에 인접한 만큼 의료 관광 수요를 흡수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영찬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치과, 성형외과를 찾은 해외 의료 관광객이 대부분 명동에 머무른다”며 “의료기관으로서의 공적인 기능은 유지하되 해외 의료 관광을 접목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전 차관은 “백병원은 학교법인이 운영하지만 민간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라며 “경영이 어렵다고 폐원을 결정한 이사회의 결정은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는 백 박사의 조카이자, 백병원 중흥기를 이끈 고 백낙환 전 인제학원 이사장의 자녀들도 참석해 폐원 사태에 대한 입장을 냈다. 백 전 이사장의 장녀인 백수경 씨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공적 의료 기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서울백병원과 지자체의 공조는 앞으로도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시는 서울백병원이 사라지더라도 해당 부지를 종합 의료시설 용도로만 쓸 수 있도록 오는 12월까지 도시계획시설 지정을 마무리하는 한편 ‘빅5’(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병원의 분원 유치도 타진한다는 방침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