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실무에서 다양한 형태의 연봉제가 활용되고 있다. 연봉제는 근로자의 성과 내지 능력을 기초로 임금을 연단위로 결정하는 임금체계를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등에서는 연봉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연봉제의 정확한 요건, 연봉의 결정방법, 효과 등에 대해서는 판례나 지배적인 견해가 없다 보니 다양한 생각과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용자가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연봉결정 체계를 적용하여 연봉액을 결정하였으나 근로자가 이를 거부하는 경우 회사가 결정한 금액을 근로계약의 내용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통일된 해석이 없다. 일부 학자들은 취업규칙 등에 연봉액의 결정기준 등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연봉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 견해에서도 사용자가 연봉결정에 대해 광범위한 재량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성과평가를 통해 연봉액이 결정되어야 하고, 충분한 논의와 설명을 할 필요가 있으며, 취업규칙에 정해진 기준, 방법에 구속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위와는 달리 연봉제 도입과 관련된 일반적인 내용은 취업규칙에 근거를 두면 될 것이지만, 연봉액의 결정 등과 같은 개별 근로자의 특별한 사항은 개별적인 연봉계약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구체적으로, 연봉제는 당사가 간의 합의를 기초로 연단위로 연봉액을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연봉제가 취업규칙에 근거가 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별도의 개별 합의를 매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취업규칙에서 연봉제 도입을 규정하고 있더라도 통상 연봉제의 운영방법 내지 평가기준을 두는 것이고 연봉액은 사후에 구체화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연봉계약이 다시 체결되지 않을 때는 당사자 일방에게 일방적인 결정권을 부여할 수는 없고 계속적 거래관계에서의 일반적인 법리에 따라 특별한 규정이 없을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존속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행정해석은 “인사고과 또는 근무평정은 사용자의 고유한 인사경영활동에 속하는 것으로서, 인사고과나 근무평정 제도를 취업규칙에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사고과 또는 근무평정의 결과가 바로 근로조건에 관하여 근로계약을 대신하는 효력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연봉제 규정(급여규칙) 및 인사고과에 의거 개인별 연봉금액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근로계약(연봉계약)의 내용으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근로기준팀-973, 2005. 11. 4.).
이러한 행정해석의 취지는 연봉계약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연봉계약 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위와 같은 행정해석의 취지에 따르면, 취업규칙에 따른 인사평가와 연봉산정의 결과가 곧바로 근로계약을 대신하는 효력을 가지거나 근로계약(연봉계약)의 내용으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산정한 연봉이 그대로 근로자의 임금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견해에 의하면 만일 근로자들이 연봉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연봉계약이 성립되지 않는 한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변경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연봉액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문제될 수 있는데, 전년도 연봉액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실무상 다수의 견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와 같은 해석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들고, 우리 기업의 실무에 맞지 않는 면도 있다. 연봉제라고 지칭되는 임금체계도 상호간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실무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연봉제 유형을 모두 하나의 해석론으로 분석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연봉제는 실질적으로 연봉협상을 통해 연봉액이 결정되는 경우와 연봉액이 내부규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산출되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만약 연봉계약이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연봉액을 정하는 계약이라면, 연봉액을 변경하기로 하는 양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가 없는 한 어느 일방의 의사만으로 기존에 적용되던 연봉액이 변경되는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일방적으로 기존의 연봉액에 미달하는 변경된 연봉을 지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연봉계약이 실질적으로는 내부 규정에 따라 자동으로 산출되어 결정된 연봉액을 통지하고 이를 수령하였음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면, 일방적으로 변경된 연봉을 지급하더라도 이는 적법하게 변경된 임금을 모두 지불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론은 판결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대법원 2015. 8. 19. 선고 2015다25676 판결은 A회사의 마이너스 연봉제 규정은 연봉액을 최대 25% 삭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A회사에 근무하던 근로자 B와 C는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수년간 평가등급을 C 또는 D를 받았고 그에 따라 연봉이 매년 동결되거나 삭감되었고, 이에 B와 C는 “마이너스 연봉제 규정은 무효이다”, “업무실적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적어도 평가등급 B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등의 주장을 하면서 B등급을 기준으로 연봉액과 자신들이 실제로 지급받은 평가등급을 기준으로 하는 연봉액의 차액을 지급하는 청구를 한 사안에 대해서, 법원은 B와 C의 평가등급이 부당하지 않고 마이너스 연봉제 규정도 유효하다고 판단하여, B와 C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기각의 논거로서 주목했던 것은 인사평가의 적정성이었다. 즉, 인사평가가 적절히 이루어져 연봉액이 결정된 것이라면 그 연봉액 결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6. 18. 선고 2013가합505107 판결도 유사한 법리로 판결을 한 바 있다.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를 분석하면 판례의 입장은 인사평가를 통해 등급이 결정되고 그 등급에 따라 취업규칙에 미리 정해 놓은 임금상승률 또는 하락률이 기계적·산술적으로 적용되는 연봉제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그러한 결과를 반영한 연봉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임금지급이 적법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결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평가가 적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규정에 따라 연봉이 자동적으로 산출되는 연봉제의 경우에는 직원이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인사평가만 정당하다면 결정된 연봉액을 통지하는 방식으로 이를 근로조건 체계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정당한 인사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