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행동주의펀드도 비판하는 상속세

입력 2023-09-24 17:51
수정 2023-09-25 00:14
주주행동주의펀드가 국내에서도 활성화하고 있다. 주식을 산 뒤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개입해 주가를 올려 이익을 내는 펀드다.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이 최근 3년 새 여섯 배 급증했을 정도다. 이런 배경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깔려 있다. 상장사 주가가 심하게 저평가돼 있어 행동주의를 통해 주가를 올릴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올해 5월 기준 코스피200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배로, 미국 등 23개 선진국 평균(2.9배)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한 원인은 뭘까. 강성부 KCGI 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 등 국내 행동주의펀드 간판 매니저들이 이에 대해 흥미로운 대답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9월 11~15일 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3’에 연사로 참여해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범으로 지목이들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취약한 지배구조 및 대주주의 사적이익 추구 경향, 미흡한 주주환원, 효율적 자본 재배치 실패로 인한 수익성 저하 등에 기인한다는 데 동의했다. 근본적으로는 과도한 상속세제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주주에게 자본이득세(주식 양도소득세)는 25%의 최고세율을 부과하는 데 비해 상속세엔 불균형적으로 최대 60% 세율을, 그것도 시가에 매기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런 세제 아래에서 상장사 오너는 기본적으로 주가를 억누르는 게 유리하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가 늘기 때문이다. 알짜 사업과 좋은 일감을 자녀 명의 개인회사에 몰아주는 것도 ‘합리적 선택’이다. 자녀가 개인회사 지분을 팔면 25% 양도세만 내면 돼 상속세를 낼 때보다 최대 35%포인트 세율을 절감할 수 있다.

사실 이들 행동주의펀드 말고도 국내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근본 처방으로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최근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속과 승계에 필요한 징벌적 세율을 현실화하면서 주주 친화적 지배구조 개선을 끌어내는 사회적 타협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펀드매니저와 학자도 늘고 있다. 상속세제 합리화 검토해야물론 이런 타협안을 도출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장 올해 세수가 60조원 펑크 나는데 부자 감세하자는 것이냐는 사회적 논란이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세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원활한 가업승계와 경영권 보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한꺼번에 유인할 묘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성부·이창환 대표는 KIW에서 상속세율을 자본이득세율 수준으로 낮추는 동시에 시가 대신 상속세 과세 기준을 ‘상속증여세법상 가치’나 장부가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이렇게 하면 일감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절세·탈세 동기를 줄여 과세 기반이 확충되고 인위적 주가 낮추기 유인도 없앨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 없이 주가 부양에 더 매진한다면 부자 외에도 1400만 동학개미가 같이 혜택을 본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소액주주 친화적인 배당제도 도입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근본 원인인 불합리한 상속세제 개편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