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를 팔아 게임 아이템 사는 사람 보셨나요?
가정을 버리고 PC방으로 가출하는 가장을 보셨나요?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든 회사가 있습니다. ‘리니지’로 게임 제국을 건설했던 엔씨소프트입니다. 엔씨소프트는 2021년까지 국내 게임사 시가총액 1위를 지켰습니다. 평균 연봉 1억원을 돌파하며 ‘신의 직장’으로 불렸습니다. 그랬던 대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전날 23만5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2021년 2월 최고점(104만8000원) 대비 4분의 1토막 났습니다. 올해만 주가가 47% 급락했습니다.
개미들은 “바닥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지하실을 뚫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개인들의 평균 매수 단가는 46만2000원입니다. 손실이 48%에 달합니다. 한 주주는 “주당 70만원에 사서 손실이 4000만원이다. 버텨도 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몰락은 리니지의 추락과 연관이 깊습니다.
1998년 처음 출시된 리니지는 ‘메타버스 원조’로 불립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리니지만큼 메타버스를 완벽하게 구현한 게임은 없습니다.
유저들은 수억 원의 현금을 아이템 구입에 사용했습니다. 리니지에는 ‘집행검’이라는 아이템이 있는데, 개당 거래 가격이 3000만원을 호가했습니다. ‘강화 집행검’은 등급에 따라 15억원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아빠들이 ‘그랜저’ 대신 집행검을 산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중독성은 막강했습니다. 2006년에는 한 30대 청년이 컴퓨터 두 대를 켜놓고 리니지를 하다 의자에 앉은 채 숨졌습니다. 하루에 20시간씩 리니지를 하다 숨진 20대 남성도 있습니다.
2019년 출시된 리니지2M은 모 대기업 오너가 수시로 휴대폰에 켜놓는 것으로 업계에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평소 화가 많은 분이셨는데 리니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시는 것 같았다”며 “최소 수십억 원은 리니지에 썼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이런 유저들을 과금해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2020년에는 매달 벌어들이는 순이익이 500억원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과금 구조가 논란이 되면서 2021년부터 사용자가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물주’로 불리는 ‘린저씨’들이 떠나가면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올해 엔씨소프트 순이익은 전년 대비 48% 감소한 2270억원으로 전망됩니다.
주가가 반등하려면 리니지를 대체할 신작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장기간 리니지에 의존했던 엔씨소프트가 새로운 게임을 성공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까지 출시를 예고한 4종의 신작은 엔씨소프트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 흥행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아이템 가격이 폭락하면서 기존 유저들의 분노도 치솟고 있습니다. 3000만원을 호가하던 집행검 가격은 최근 7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