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내내 ‘강철 멘털’을 과시했다. 혼밥 뒤 ‘민생 일정이 중국인 가슴을 설레게 했다’며 균형 외교를 자찬했다. 트럼프의 무시와 김정은의 핵 고도화 뒤통수에도 ‘내가 평화를 열었다’고 노래 불렀다.
퇴임하면 달라질까 했더니 더해졌다. 엊그제 퇴임 후 첫 서울 행차에선 ‘집권 때 경제성과가 탁월했다’며 민망하게도 성공한 경제 대통령임을 호소했다. 실시간 지표가 쏟아져 좀체 선동이 먹히지 않는 분야가 경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도발적인 행보다.
임계점을 넘어선 성공 호소가 조작에 가까운 왜곡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태위태하다. 한국이 ‘10대 경제강국’에 든 때는 노무현·문재인 정부뿐이라고 자랑했지만 전형적인 침소봉대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처음으로 GDP 기준 ‘G10’에 진입한 건 맞다. 하지만 직전 정부와 11위로 바통 터치해 그 탄력으로 잠시 G10에 오른 뒤 13위로 임기를 끝내 흑역사에 가깝다.
자신이 11위 자리를 넘겨받아 10위로 임기를 마친 게 ‘경제 성공의 징표’라는 주장도 낯 뜨겁다. 그런 논법이면 14위에서 출발해 11위로 마감한 박근혜 정부 때는 ‘경제 태평성대’로 칭송해야 마땅하다. ‘노무현 때 2만달러, 나 때 3만달러 소득 시대를 열었다’고 공치사한 대목도 민망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특정 마디를 통과했을 뿐이다.
문 전 대통령이 수출, 주가, 외국인투자액을 자랑한 것도 뜬금없다. 무역 규모가 세계 8위로 한 계단 올랐지만 2010년부터 줄곧 8~9위권이었기에 별 성과가 아니다. 저금리로 글로벌 증시가 치솟은 와중의 코스피 강세도 특별할 게 없다. 또 윤석열 정부가 올 상반기에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판에 외국인 직접투자 언급은 뜨악하다. 재임시 물가안정과 재정 효율을 달성했다는 주장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어떤 투쟁을 벌여도 두 정부의 낙제점 경제성적표가 바뀔 수는 없다. OECD(34개국) 대비 초과성장률을 뽑아보면 문 정부가 0.31%로 가장 부진하다. 두 번째는 0.55%의 노 정부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초과성장률은 각각 2.80%, 0.61%로 문 정부보다 최대 9배나 높다. 더구나 문 정부 성적표는 나랏빚을 400조원 넘게 늘린 결과라 변명조차 불가능하다.
굳이 데이터를 들춰보지 않아도 문 전 대통령은 자기주장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해 염치 불고하고 100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SOC 사업 예타 면제로 폭주한 게 불과 두어 해 전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날 ‘봉하마을 귀향식’ 때 주민들 앞에서“제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했습니까”라며 겸연쩍어했던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가뜩이나 초유의 통계 조작에 전 국민이 분노하는 중이다. 집권 바로 다음달부터 엘리트 공무원과 공기관 직원을 예산과 자리로 위협해 집값과 소득을 분칠했다. 그래도 안 되자 말 안 듣는 통계청장을 갈아치우고 분배 악화와 고용 지옥을 감췄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국민을 속이고 국가정책 인프라를 무너뜨린 최종 책임자가 문 전 대통령임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경제는 보수 정부라는 인식은 조작된 신화’라며 노골적으로 진흙탕 싸움을 주문했다.
훅 불면 날아갈 한없이 가벼운 한 줌 가짜 데이터에 기댄 성공 호소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허위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네의 유구한 전통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통계 조작이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든든한 영웅의 존재가 확인됐다. 자리를 걸고 불법에 맞선 황수경 전 통계청장, 집요하게 팩트를 파고든 유경준 의원 등이 그들이다. 만만한 한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