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브라도 리트리버의 평균 수명은 12.5년. 매일 보행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안내견의 경우 이보다 조금 긴 14년 정도를 산다. 시각장애인의 파트너로 임무를 완수한 은퇴 안내견은 견생의 황혼기에 접어든다. 노령이 된 이들은 누구와 여생을 보낼까.
올해 열두 살을 맞은 은퇴 안내견 ‘해리’를 경기 안산의 어느 가정에서 만났다. 해리는 2011년 김창주 씨(54) 집에서 퍼피워킹을 마치고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8년을 보냈다. 이후 10년 만인 2021년 김씨 가족과 다시 만났다. 함께 사는 여섯 살 안내견 종견 ‘해빛’에 비해 움직임이 느릿한 모습이었지만, 인터뷰 내내 편안한 자세로 김씨 곁을 지켰다.
김씨 가족은 해리를 다시 입양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쳤다고 했다.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노환으로 해야 할 병간호는 물론 금세 다시 찾아올 이별의 슬픔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퍼피워킹을 할 때 주변에 은퇴견은 못 받을 것 같다고 호언장담했어요. 하지만 막상 해리의 은퇴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움직였죠. 1년 같이 있었을 뿐이지만, 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해리를 처음 만난 그날을 김씨는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퍼피워킹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들이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처음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이렇게 큰일인 줄 몰랐어요. 홍보에 나선 훈련사분들과 우연히 마주쳤고, 이때 해리를 만나 운명처럼 데려오게 됐죠.”
지금은 차분한 모습이지만, 어릴 적 해리는 여느 강아지처럼 기운이 넘쳤다고 했다. 반려견에 관한 경험이 없던 김씨는 애를 먹었다. 집안 곳곳에 오줌을 누고, 산책하러 나가면 주변 행인들한테 달려들기 일쑤였다. 매달 방문하던 담당 훈련사도 한숨을 쉬며 “어차피 탈락할 것 같으니 많이 예뻐해 달라”고 권할 정도였다.
주변의 냉랭한 시선에도 맞서야 했다. 안내견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보행 훈련을 위해 방문한 공공시설에선 번번이 쫓겨났다. ‘죄송한데 나가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가 쌓였다. “보통 반려견이라면 평범했을 산책도 안내견과 함께하려면 용기와 계획이 필요했죠. 어디에 가야 덜 상처받고, 어디에 가야 제가 용감해질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이랬던 해리는 훈련 막바지에 높은 점수를 받아 안내견이 됐다. 김씨는 “평가에서 탈락하면 분양해서 함께 살려고 결심했는데, 막상 안내견에 합격했다고 하니 대견하면서도 섭섭했다”고 회상했다. 해리의 시각장애인 파트너로부터 “해리가 참 예의 바르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동안 김씨와 해리는 자원봉사자와 안내견이라는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해리를 시작으로 ‘파란’ ‘세움’ ‘해빛’ 등 네 마리의 안내견이 김씨의 손길을 거쳤다. 전부 안내견 심사에 최종 합격했다. 이 중 해빛이는 번식견인 종견으로 선발돼 김씨 집에서 해리와 함께 머무르게 됐다. 김씨는 “해리를 떠나보낸 그리움에 퍼피워킹 자원봉사를 계속했다”며 “곧이어 은퇴할 다른 안내견들의 마지막도 함께 지켜줄 계획”이라고 했다. 은퇴한 해리를 데려오면서도 ‘수고했다’는 말을 애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마치 고생하다가 이제야 쉬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면 시각장애인 파트너분께 실례가 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해리한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요. 태어나서 안내견이라는 직업도 가져보고, 파트너 할아버지한테 사랑 듬뿍 받고 건강히 돌아와줘서 고맙구나. 행복해 보이니 행복한 줄 믿을게. 나이답지 않게 건강하니 평안한 것이라 생각할게. 그동안 잘 살았지?”
안산=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